노루 꼬리는 왜 짧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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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꼬리는 왜 짧을까
  • 김기순 수필가
  • 승인 2019.01.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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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순 수필가

모든 동물은 꼬리가 달려있다. 꼬리의 주된 임무는 감정 표현이다. 동물들이 꼬리를 흔드는 것은 일종의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행위다.

동물의 꼬리는 감정표현 말고도 균형 감각을 잡아주거나 귀찮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소나 말은 모기나 파리가 귀찮게 달라붙으면 꼬리로 냅다 후려쳐서 쫓아낸다. 원숭이의 꼬리는 손처럼 쓰이기도 한다. 원숭이의 긴 꼬리를 나뭇가지에 둘둘 말아 대롱대롱 매달려 노는 모습은 보기에도 신기하다.

암컷 공작에게 구애를 하기위해 펼쳐진 수컷 공작의 꼬리는 화려함의 극치다. 오색찬란한 부채모양의 넓은 꼬리를 흔들 때는 암컷 공작뿐만 아니라 사람도 넋이 나간다. 여우의 꼬리는 간교함의 대명사다. 여우가 얼마나 간사하면 구미호라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어렸을 때 들은 옛날이야기가 있다. 여우는 닭의 간을 좋아하는데 닭의 간을 먹기 위해 꼬리를 치면 닭은 여우에게 혼이 빠져 자기의 간이 빼 먹히는 줄도 모른다고 했다.

동물에 따라 꼬리의 생김새는 각양각색이다. 돼지 꼬리는 큰 몸집에 비해 가늘고 앙증스럽게 뱅글뱅글 말려있다. 기분이 좋거나 배가 부르면 가는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 댄다. 그러나 불안하거나 기분이 나쁠 때는 꼬리를 돌돌 말아 엉덩이에 딱 붙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고양이의 꼬리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갯과의 동물들이 위협을 느끼거나 공격적인 태세에서 꼬리를 바짝 내리는 반면 고양이는 꼿꼿하게 높이 세운다. 고양이의 자태만큼이나 꼬리의 반응도 도도하다. 기분이 좋아도 돼지나 개처럼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지 않는다. 좌우로 아주 천천히 품위 있게 흔든다. 개의 꼬리처럼 가벼울까.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꼬리가 떨어져 나갈 듯이 흔들어 대다가도 경쟁의식을 느끼면 금세 꼬리를 뒷다리 사이로 숨기고는 으르렁거린다.

진화과정에서 사라졌지만, 사람에게도 꼬리가 있었다고 한다. 척추 맨 끝에 있는 미골이 꼬리 자리라고 한다. 왜 사람의 꼬리는 퇴화하였을까. 사람의 꼬리가 퇴화한 것은 필요 없는 부분으로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과 달리 두뇌를 이용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를 쓰고 직립보행 할 만큼 균형 감각이 뛰어난 사람에게 꼬리가 뭐 필요하겠는가.

감정을 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동물의 꼬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는 매우 다행한 일이다. 마음속 감정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면 이보다 혼란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마음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은 신이 내린 특혜다. 그러나 마음을 감출 수 있다 하여 오욕칠정을 함부로 발동한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개의 꼬리같이 가벼워서 믿음을 주지 못해도 안 되겠고, 고양이 꼬리처럼 도도해서 위화감을 불러오거나 불화의 원인이 되어서도 안 되겠으며, 여우 꼬리처럼 간사해서 조삼모사의 얕은꾀로 세상을 어지럽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다는 말이 있다. 겨울의 짧은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는 희망적인 표현도 되겠지만 노루 꼬리가 그렇게 짧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몸집에 비해 짧은 꼬리를 가지고 있는 노루를 볼 때마다 저 동물의 꼬리가 짧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했다. 해답은 노루의 지조와 생활환경에서 찾을 수 있었다. 노루는 일부일처제다. 금슬이 좋아서 다른 노루에게 꼬리를 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긴 꼬리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루는 험준한 고산지대에서 살기 때문에 꼬리가 길면 불편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 퇴화하였으리라 짐작된다.

대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고 노총도 한몫 거든다. 사 측은 원칙과 명분만 내세울 뿐 양보는 없다고 한다. 대화가 필요한데 서로 다른 사고와 다른 색깔로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목적으로 똘똘 뭉쳐있는 꼬리만을 꼿꼿이 세우고 나를 보란 듯이 흔들어 댄다. 노사 모두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내리고 소통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휴대전화 소리가 요란하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다. 받아보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다. 나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잘 지냈느냐며 안부를 묻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어물거리고 있는데 미안하다며 밥 한번 먹잔다. 화해는 용기가 필요한데,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나만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니었을 텐데…….’
차츰 미움이 사라져가는 마음 안으로 미안함과 그리움이 살포시 밀려온다. 누굴 지탄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부끄러워, 젠체하던 꼬리를 슬며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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