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귀촌인 어우러진 활기찬 마을 ‘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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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귀촌인 어우러진 활기찬 마을 ‘현리’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1.3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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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중심지…풍수지리적 배산임수 지형
옥수수감자축제·노인의 날 등 각종 행사 개최

안내면 현리(이장 전상현) 마을회관에 들렀다. 이 지역의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마을에 관한 것을 여쭤보라는 전상현(62) 이장의 말이 있어서다. 오랫동안 마을에 살면서 보고 들은 것을 듣는 것이 마을 탐방하는데 가장 생생한 정보가 될 것이란 생각도 앞섰다. 현리 마을회관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김하자(97) 어르신 혼자 있었다. 매일 회관에 들르던 어르신이 오지 않아 모두들 병문안을 갔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 후 김선호(89), 권상숙(84), 김종순(73), 정희준(82), 정순복(88) 어르신이 차례로 들어왔다. 현리에 17살 혹은 25살에 시집와 60~70년을 한 자리에 살면서 생을 같이한 이웃이라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까지 훤히 안다고 했다.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이 전해준 ‘현리’에서의 삶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편집자 주>

△ 현리의 어르신들
김하자 어르신은 97세다. 마을에서 최고령자라고 했다. 음식도 잘 드시고 말씀도 잘하신다. 18살에 시집와 9남매를 낳아 길렀다고 한다. 어르신은 “옛날에는 사람이 많아 좋았는데 이제 모두 떠나고 세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며 “그동안 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지내기에 살기 좋은 곳이었다”고 지나간 시간을 추억했다.

김선호 어르신은 89세로 19살 2월에 현리로 시집왔다. 아들 3형제를 키웠고 18년 전 남편이 먼저 가고, 마을 이웃과 동생 형님 하며 가족같이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어르신은 “발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이라며 “이웃이 착하고 인심이 좋아 다들 잘해 준다”고 했다.

권상숙(84) 어르신은 서울이 고향이다. 1969년 큰 딸 6살 때 남편이 유선방송 사업을 하게 되면서 현리로 들어와 60년을 살았다. 이곳에서 2남 2녀를 키우고 지금은 ‘한글학교’도 다니고 마을회관에도 다니면서 이웃들과 편안하게 지내고 있단다.

김종순(73) 어르신은 경기도 안산에서 살다 7년 전 귀촌했다. 우연히 보은 가는 길에 현리를 보게 됐고 편안해 보여 이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희준(82) 어르신은 막지리가 고향이다. 25세 때 시집와서 1남 3녀를 키웠다. 어르신은 “이웃과 의지하며 살아온 세월이었다”며 “마을에서 옥수수감자축제, 노인의 날 행사, 3.1절 걷기대회, 초하루 날 해맞이 행사 등 여러 지역행사를 열어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참석해 즐겁다”고 했다.

늦게 회관에 도착한 정순복 어르신은 88세로 17살 땐가 18살 때 이곳으로 시집와 이때까지 살아왔단다.

전상현 이장은 “현리는 귀농, 귀촌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마을로 현재 70여 가구가 살고 있다”고 설명해 줬다.

△ 위치와 연혁
현리는 안내면소재지로 행정, 교육, 상업의 중심지다. 파출소, 학교, 농협, 신협, 보건지소, 우체국 등의 각급 기관이 모여 있다. 전통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마을 뒤편은 수복봉이 자리하고, 앞에는 안내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가며 넓은 들을 형성한다. 면적은 3.32㎢이며 인구는 476명이다. 동쪽은 정방리와 안남면 화학리에 이웃하고 남쪽은 인포리와 접한다.

서쪽은 답양리와 군북면 막지리가 용문산을 경계로 접하며, 북쪽은 동대리, 도이리 정방리와 인접한다. 현리는 원래 신라 505년(지증왕6) 아동혜현, 통일신라 때는 안정현, 고려시대에 안읍현으로 바뀌었다가 1413년(조선 태종13)까지 900년간 현의 소재지였다. 이후 안내면에 소속됐다. 마을 앞으로 옥천과 보은을 잇는 37번 국도가 통과하며 안내천이 덕대산과 방하목에서 발원해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흘러 대청호로 들어간다.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 현리로 되어 있고, 1830년대 ‘옥천읍지’에는 옥천 관문에서 동쪽으로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마을 유래
현리는 신라 때부터 아동혜현, 안정현, 조선 초기 안읍현에 이르기까지 현의 관아가 있는 소재지로 현청이 있어서 현리라 했다.

또 조선시대 한양에 보내는 식량과 조공품을 보관하는 안읍창이 있어 창(倉)말이라고도 불려왔다. 현리와 신촌리 2개 리가 있으며 자연마을은 현리의 창말과 아랫말, 웃말, 신촌, 탑산이가 있다. 대청농협 광장에서 매년 7월 ‘옥수수 감자축제’를 개최한다. 관광객들의 호응이 좋아 전국으로 팔려나가 안내·안남면 농가에 큰 소득을 올려주고 있다.

△ 주요지명
1413년에 안읍현의 현내 안쪽에 있다고 하여 안내면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곡물이나 조공품을 보관하던 안읍창이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창(倉)말이라고도 했다. 둥그레봉은 현리 북동쪽에서 안내 주유소에 이르는 둥근 모양의 산으로 두루봉이라 부른다. 수복봉은 현리 서쪽 해발 214m의 산으로 해맞이를 하고 있으며 정자가 있다. 고듬티(곧음티재)는 현리 한복판에서 북쪽에서 서대리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다. 네묵재는 현리 남쪽에서 인포리 걸포에 걸쳐있는 산으로 성황봉이라 한다.

말봉(뜬봉)은 현리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뜬봉이라고도 부른다. 상보는 현리 맨 위쪽 서대천에서 첫 번째 보이는 곳이다. 현리 서쪽에 있는 골은 쇠꽃날골이다. 장승배기는 창말 서편 입구에 옛날 정승이 서 있던 자리다. 창말성터는 현리 남쪽 산에 있던 삼국시대 화학리 산성을 말한다. 전시에 읍성으로 활용됐다.

현리마을 앞으로 흐르는 안내천으로 서대리 인근에서 발원하는 곳이 서대천이다. 월외촌은 신촌 동북쪽을 흐르는 하천으로 월외리에서 발원한다. 안내천주교는 현리 서편 언덕에 1911년과 1957년에 개설한 옥천천주교 현리공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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