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덕 하면”…실천주의자 신각휴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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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덕 하면”…실천주의자 신각휴 의원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1.3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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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구현, 헌정사에 이정표 남겨
신민당 최고위원·민정당 부총재 역임
▲ 정치인 신각휴

△ 정치인 신각휴의 삶
정치인 신각휴는 1896년 1월 1일 충북 영동군에서 출생하여 옥천읍 매화리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76년 8월 10일 사망했다.

부인 이금농 여사와 사이에 아들 공우(철도공무원), 면우(의학박사), 여식으로 명자, 연자, 한우, 성우가 있다. 서울 오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베이징 대학 2학년 중퇴 후 화풍광산 소장을 역임했다.

1945년 광복 후 옥천에 돌아와 우익단체인 옥천군 단장과 옥천군 축산동업조합장과 옥천군 번영회장을 역임하다가 정계에 투신, 1950년 제2대 민의원에 당선하고,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56년 민주당 노동부장 민주당 충북도당 위원장에 선임되었고, 1960년 제5대 민의원에 당선 3선 국회의원이 됐다. 그해 민주당 구파 동지회에 가입하고, 신민당 부위원장에 선출됐다. 민주당 창당과 함께 노동부장 충청북도당위원장 등의 책임을 맡았다.

△ 말보다 실천주의자
신각휴 의원은 연설할 때 언제나 “말로 덕을 하면 삼천만이 먹고 남아요”라고 서두를 시작했는데 듣기 좋은 말보다는 실천을 강조하는 강골이었다. 부산 피난국회에서 1954년 11월 27일 자유당의 4사5입 개헌 당시, 민주당 의원으로 결사반대하는 주동자로 투쟁해 경찰 최난수, 노독술 형사에게 체포되어 가는 수모를 겪었다. 자유당 말 제3대 국회의원 시절 나이 60세 고령이었으나 농림부 간부들을 국회 농림위원회에 불러다 공격할 때는 빈틈이 없었다.

최인규가 외자청장으로 있을 때 국회에 출석해 발언하는 도중, 신랄한 추궁에 말문이 막혀 눈물을 흘린 일도 있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자유당 권복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민주당충청북도당 위원장에 선출됐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같은 해 연말 민주당 구파 정치인들과 신민당 창당에 참여했다. 4·19혁명 후 체신부 장관에 임명됐으나 농림부 장관이 아니고 자신의 의정 목적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취임을 거절한 일화가 유명하다.

△ 군사정권에 항거
5·16군사정변 이후 민정당이 창당되자 민정당에서 중앙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옥천·보은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민주공화당 육인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신민당 최고위원과 민정당 부총재에 취임해 끝까지 군사정권에 동조하지 않고 민주주의 정도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이 같은 민주주의 정치이념 구현과 정통성의 고수는 우리나라 헌정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윤보선, 김도연 등과 함께 신한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고령에도 불구하고 강한 정치욕을 보였으나 원내로 진출하지 못했다.
불굴의 정치인 신각휴 의원이 소천하고 후손들은 서울로 나가 고향 옥천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있다.

고택은 헐어버리고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 빈터엔 대나무와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지금도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은 신각휴 의원 이야기가 나오면 소신 있고 용기 있는 불굴의 정치인으로 존경받는다. 

▲ 집필자 안후영

△ 집필자 안후영
집필자 안후영은 (사)옥천예총 회장과 (사)옥천향토사 회장을 역임했다. 그가 옥천향토사 회장으로 있을 때 ‘옥천의 역사인물’ 1집을 출간했다. 이후 이재하 회장의 추진으로 2집이 발간됐다. ‘옥천의 역사인물’ 2집 발간에 전 향토사 회장으로서 참여하게 된 것. 신덕휴 의원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 연락을 취해도 할아버지에 대해 모른다고 일관하는 바람에 쉽지 않았다고 했다.

30살의 나이 차가 있긴 하지만 같은 야당 출신인 이용희 의원에게 일부 신각휴 의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국회 속기록을 통해 자료를 구해 집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안휴영 집필자는 “신덕휴 의원의 집터가 허물어져 풀만 우거져 있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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