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이 살아 숨 쉬는 역사적 마을 ‘백운리’
상태바
3·1운동이 살아 숨 쉬는 역사적 마을 ‘백운리’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2.28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명의 독립유공자 배출한 충효마을
정월대보름·어버이날 등 다양한 행사

청산면 백운리는 도덕봉과 덕의봉 사이로 백운천이 흐르고 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하천에는 일급수 물이 흘렀다.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중태기와 가재, 올뱅이(다슬기), 싸리미꾸라지가 풍성한 마을이었다. 백운천 돌미나리가 싯푸르게 자라면 마을 어르신들은 미나리를 뜯어다가 부침개를 부치고 나물을 해서 함께 나눠 먹었다. 깨끗하게 흐르는 하천을 따라 수십 개 솟대가 세워져 있었다. 한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장승도 조만간 마을 어딘가에 세워질 것이라고 했다. 독립유공자만 7명이 배출되었다는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마을 백운리를 찾아가 보았다. 박선옥 이장을 만나 마을의 유래와 앞으로 마을 발전을 위한 진취적인 계획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편집자 주>

△ 박선옥 이장
“제가 마을 이장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마을 주민의 뜻에 따라 이장 일을 맡게 된 이상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백운리를 위해 발로 뛰고 마을의 전통을 살리고 주민들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녀의 목소리는 에너지가 가득했다. 박선옥 이장이 오전 9시부터 나와 마을 일을 맡아보는 곳으로 안내했다. 사무실은 소박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늘 문을 개방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장을 맡은 후 모든 행사와 주민 교육을 SNS에 올려 주민들이 알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다”며 “마을방송뿐 아니라 문자로 발송하거나 그것도 보지 못할 경우 직접 전화를 걸어 정부 지원 시책 등의 혜택을 모든 주민이 알고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 백운리 마을에서는?
백운리에서는 365일 어르신들의 점심을 제공한다. ‘쿡크린’ 봉사자 2명이 배정, 10일간의 식사를 담당한다. 나머지 날들은 주민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 3명씩 조를 이뤄 돌아가면서 점심준비를 해 같이 나눈다. 작년 11월 준공된 ‘건강관리실’은 음이온이 나오고 찜질을 할 수 있어 어르신들이 사용하며,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7일 정월대보름 잔치에서는 반대항 윷놀이, 제기차기, 투호경기, 소원풍선 날리기 등 다양한 행사로 마을 주민들이 함께 행복한 날을 보냈다. 이날 여종구 씨에게는 마을에서 준비한 공로패가 돌아갔다. 그는 자연보호 환경에 솔선수범해 마을의 궂은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깨끗한 마을 만들기에 앞장선 공을 인정, 감사함을 전한 것. 박선옥 이장은 “앞으로 백운리는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범죄 없는 마을, 주민이 서로 소통하고 협동하는 마을로 나아갈 것”이며 “어른을 공경하고 충효사상으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지역이 되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곧 있으면 백운리 마을 주민들은 봄나들이를 갈 예정이다. 5월 8일 어버이날엔 꽃 달아드리기도 할 것이다. 청산초등학교와 아자학교(전래놀이학교)가 MOU체결을 맺고 학생들은 춤과 노래를, 어르신들은 마을의 전래놀이를 전수하기도 한다. 또한 백운리가 충청북도 공모사업인 ‘풍경이 있는 마을’로 선정됐다. 박선옥 이장은 앞으로 ‘평지맛샘’을 복원하고 공원을 만들어 주민들의 쉼터와, 주민 문패 만들기, 도덕봉과 덕의봉에 등산로 표지판 등 마을 발전을 위한 사업 계획에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될 거라며 기대에 차 있었다.

△ 7명의 독립유공자 배출
백운리에는 독립유공자 7명이 배출된 마을로 1919년 3·1만세 운동 100주년 기념을 맞이해 KBS1 ‘한국인의 밥상’ 특집으로 지난 1일 촬영을 마쳤다. 이날 박선옥 이장은 당시 먹거리였던 ‘빠람죽’, ‘칡수제비’, ‘보리개떡 ’을 재현했다. 또한, 청산의 대표 음식인 ‘청산생선국수’, ‘도리뱅뱅’, ‘인삼곶감’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박 이장은 “백운리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마을로 독립유공 정신과 사라져가는 역사적 의미를 발굴해 그 전통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마을 지명의 유래
백운리는 청산면 서부에 위치한 덕의산 남부 기슭으로 예부터 청산읍내였다. 동쪽은 교평리, 남쪽은 하서리와 지전리, 서쪽은 청성면 장연리, 북쪽은 만월리와 대성리에 인접한다. 원래 청산현 현내면 백운동리에 속하던 마을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내면이 청산면으로 바뀌면서 옥천군에 소속되었고, 이때 마을 명칭도 백운동리에서 백운리로 개명됐다. 백운리라는 지명은 1460년 경 조선 세조 때 청산현감이 지은 정자에 영중추부사였던 김수온이 백운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면서 만들어지게 됐다. 당시 김수온은 “청산에는 백운이 없는 데가 없고 백운이 있는 데는 청산이 없는 데가 없다”라고 하며 “청산은 백운 밖에 푸르며 백운은 청산 속에 희고 희다라 하였으니 ‘백운정’이라 함이 좋겠다”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백운리라 불린다. 자연마을로는 고백이, 중골, 돌안마, 평지말 등이 있고 벼농사와 인삼을 재배한다. 주요 성씨는 밀양 박씨와 경주 이씨가 세거한다. 문화유적으로 밀양 박씨 재실, 백운사 부도가 있다.

△ 백운 산신제
1970년대까지 마을 공동으로 산신제를 지냈다. 제일은 음력 정월 열나흗날이며, 제당은 중턱에 위치한 자연제당이었다. 음력 섣달 보름에 깨끗한 사람으로 제관을 선정한다. 이때 아들을 낳지 못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집을 선정하기도 한다. 제관 부부는 선정된 날로부터 제삿날까지 집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놓고 약 한 달 동안 정성을 드린다. 부정한 곳에도 출입을 하지 않고 매일 목욕재계를 하는 등 조심한다. 제비는 마을 공동의 밭과 논의 소출로 마련된 기금에서 충당한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 자정이 되기 전 제관 내외와 깨끗한 마을 노인 2~3명이 산신당으로 올라간다. 제사는 기제사와 유사하게 진행되며, 제사 마지막에 소지를 올려준다. 이튿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를 잘 모셨다는 의미로 집 앞에 3무더기씩 총 9무더기의 황토를 피워 놓으며, 다 함께 제관집에 모여 음복을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