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크나무 / Teak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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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크나무 / Teak tree
  • 정홍용 안남 화인산림욕장 대표
  • 승인 2019.02.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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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용 안남 화인산림욕장 대표

1970년대에는 보르네오 티크 장농이 혼례가구로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순수한 티크 원목으로 제작된 튼튼하고 실용적인 근대가구의 원조격이다.

옛날 이름난 장인들이 톱, 끌, 대패, 아교를 이용하여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궤짝 가구가 아닌 현대 기계설비로 정확한 도면에 의거 정밀기계로 정교하게 제작하여 가구를 혁신시킨 장본인이 보르네오 가구의 위상식(韋相植) 사장님이시다.

위 사장님은 미8군 통역장교로 복무하면서 여러 건축공사를 체험할 수 있었고, 미군의 풍부한 목재 물량에 놀란 데다 목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을 체득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위로 제대함과 동시에 인도네시아 Borneo(현재는 인도네시아 쪽은 칼리만탄이라고 부른다)섬을 수년간 오가며 목재를 수입하여 상당한 자금 축적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단다.

그래서 보르네오를 잊을 수 없어 은혜에 보답하고자 아예 상호를 ‘보르네오 가구’라고 작명했다는 일화도 그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위상식 사장이 장남이며 일어, 영어, 이태리어, 독일어에 유창할 뿐만 아니라, 대단한 독서광 이어서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있는 달변가로서 그와 얘기를 나누면 두세 시간은 금새 지나간다.  

전성기에는 직원이 6,000명이 넘었으며, 주한 미국대사가 부임해 오면 보르네오 가구는 필수 견학코스이기도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삼형제는 모두가 서울대를 나온 수재로서 3남인 동서가구 위상균(韋相均) 사장은 전성기에 1,600명, 4남인 바로크가구 위상돈(韋相敦) 사장도 1,500명 이상의 직원을 가져 위 씨 3형제가 한국 가구업계를 명실공히 선도했다. 특히 보르네오 위상식 사장님은 우리나라 가구업계를 이끌었던 불후의 족적을 남기신 분으로 커다란 획을 그은 선구자였다.

티크라면 흔히 교과서나 사진에서 보던 코끼리가 운반하던 나무를 연상하게 된다. 사실 티크재는 중장비가 많이 보편화 되지 않던 시절에 코끼리를 이용한 티크재 수출은 쌀과 더불어 태국의 일등 알짜 수출품목이었다.

무겁고 단단한 티크재를 벌목장에서 정글을 헤치고 도로까지의 운반은 모두가 코끼리들 몫이었다.

티크재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는 그야말로 코골탑(코끼리 뼈로 세워진 탑)의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티크는 재질이 단단하고 견고하며 무늬도 뚜렷한 데다 유분(油分)까지 함유되어 있어서 선장가구(船裝家具), 철도 차량 내장재, 건축재, 마루판재, 가구재로 널리 쓰인다.

티크는 타이란드가 가장 많고, 라오스, 미얀마, 말레시아 오지에도 분포되어 있으며, 직경이 2~2.5m에 달하고 수고(樹高)도 30m까지 자라는 거목으로 가공성이 좋고 휨이나 갈라짐이 없는 고급 수종이다.  

태국에서의 티크재는 무분별한 벌채로 이미 1970년대 후반기부터 산간 오지가 아니면 구경할 수 없는 수종으로 변해 버렸다.

1990년 중반기에 싱가포르 뉴 오다니New Otani) 호텔에서 오랜 지인인  가와무라(河村) 사장과 가와무라의 동업자 영국인 밀러(Miller) 사장을 우연히 만났다.

필자를 보더니 티크재가 너무 비싸 구입이 어려워 어떤 대가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지역으로 들어가 보겠단다.

필자도 악명높은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티크라고 하기에 호기심이 동하여 함께 가기로 했다.

이 트라이앵글 지역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의 국경이 맞닿는 삼각지역으로 3국 행정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 무법 지역이어서 일찍이 미국 뉴욕으로 밀반입되는 아편과 히로인이 80%나 차지하는 마약천국이었다.

끈질긴 국제사회의 제재 노력으로 이제는 마약과 히로인 대신 커피와 차, 관광으로 생계수단을 돌리고 있다.

골던트라이앵글이란 유래는 아편과 금의 무게를 1:1로 맞교환했기 때문이란다. 싱가포르에서 치앙마이(Chiang Mai)로 날아가서 대형 트레일러 5대에 통역 겸 인부로 2명, 운전수까지 10명이 거의 비포장도로 투성이를 이틀이 넘게 걸려서 닿을 수 있는 희한한 곳이었다. 아편 대신 티크가 그들의 주수입원의 일원이 되어 국제가격의 20%에 불과했지만, 국경을 넘고 넘어  검문소(Check point) 곳곳마다 지불하는 뇌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목숨까지 담보로 한 위험부담에 비하면 그렇게 메리트가 있지 않아 보였다.

미얀마 국경을 지날 때도 돈을 요구하더니 시도 때도 없이 가슴에 수류탄까지 주렁주렁 매달고 험상궂은 얼굴에 M16과 AK-47등 온갖 잡다한 총기를 옆구리에 들이대며 곳곳에서 돈을 요구했다. 라오스를 지날 때는 국경 초소에선 여권 대신 아예 돈부터 내란다.  조금 지나자 AK-47  자동소총을 난사하면서 각자 총을 들고 떼거지로 몰려왔다. 다짜고짜 우리들을 차에서 끌어내려 무릎을 꿀리고는 옆에다 위협 사격으로 총탄을 마구 퍼부어댔다. 그중에는 열살도 채되어 보이지 않는 앳띤 얼굴의 꼬마들도 어깨에 버거운 총을 메고 있었고, 연발실탄용 누런탄티를 X로 걸치고 자동소총을 휴대한 13~15세의 소년들도 보였다.

너무 놀라고 겁을 먹으면 공포에 질려 똥, 오줌을 싼다던데, 난생 처음으로 이런 험한 일을 당하는 가와무라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밀러는 공황상태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았지만 그 당시는 문자 그대로 무법천지 같은 공포의 도가니로 신이 버린 지역이었다.

치앙마이로 돌아와 호텔 풀장에서 맥주를 주거니 권커니 할 때 군대 경험이 없는 가와무라는 그때 바로 귓전 가까이서 울려대는 총성이 너무나 큰 데다 뜨거운 탄피까지 등허리에 사정없이 떨어져 고막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단다. 천금이 생겨도 두 번 다시 가지 않겠다고 밀러와 함께 머리를 흔들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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