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그리고 가짜 배고픔과의 전투(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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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그리고 가짜 배고픔과의 전투(Ⅱ)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19.03.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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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어릴 적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리나케 집을 나서서 놀이친구들을 찾아 나서던 일들이 생각난다.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뛰어나가는 등에 대고 일찍 들어오라고 소리치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옮겨 다니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비석치기를 하다가 편을 나누어 닭싸움도 하고 조그만 고무공을 차면서 골목축구도 하였다. 그러다가 어둑어둑해서야 집에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다시 나와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방과 후의 시간이 온통 놀이와 놀이가 주는 설렘으로 채워졌던 것 같다.

지금 스마트폰과 컴퓨터 앞에서 정신없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그 모습을 볼 때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든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친구와 웃고 떠들고 어깨동무하고 놀았던 예전의 놀이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요즘 놀이에서는 인간 냄새나는 건강한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 혼자서 차가운 기계 상자를 마주하고 들려오는 총성과 포성의 기계음에 묻혀 정신이 빼앗긴 모습에서 과거의 놀이와 본질적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찌되었든 그 차이에 대한 생각은 여기서 접어두고, 제목에 걸맞게 식욕과 놀이에 대해서 말해보자. 지난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노느라 바빠서 먹는 것도 잃어버린 때가 많았다. 저녁식사 때 노느라 집에 늦게 들어가면 어머니의 꾸중을 통과의례처럼 자주 들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지금의 어린아이들의 놀이모습과 비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독일이나 미국에서 진행된 여러 연구들은 아이들의 놀이형태와 비만과의 관계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그 연구들을 소개하면 한 그룹의 아이들에게 집안에서 컴퓨터게임을 하도록 하고, 다른 한 그룹의 아이들에게는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게 하였다. 그리고 두 그룹 모두 자유롭게 음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주일 동안 아이들이 음식을 통해서 얻는 칼로리 섭취량을 비교해보니, 예상과는 다르게 컴퓨터게임을 마음껏 하도록 한 그룹의 어린이들이 훨씬 많은 양의 칼로리를 간식 등을 통해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식욕이 높아지거나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 반드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결과로 인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부지불식간에 인과관계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우리의 오래된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수렵채취라는 삶의 패턴을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장기간 겪어왔던 인간에게 ‘허기증’이란 ‘많은 에너지 소비의 결과’라는 등식이 대체로 성립되었다. 그러나 수만 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의 몸에 학습(?)된 이 등식은 순식간에 일어난 생활 패턴의 변화로 인해 더 이상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

서너 시간이 넘도록 컴퓨터란 요상한 물건 앞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후손들의 모습은 수렵과 채취생활을 하던 조상은 말할 나위도 없고, 불과 한 세기 전의 사람들에게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만일 이 후손들의 머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뇌신경 사이에 엄청난 양과 속도로 이루어지는 정보의 교통량을 모니터로 볼 수 있다면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이 정보의 교통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뇌는 빠른 속도로 혈당을 먹어치우게 된다. 정상적인 조건에서 다른 조직세포와는 다르게 뇌는 오로지 혈당만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근육만을 열심히 사용했기에 에너지사용량은 보잘 것 없지만, 뇌는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떨어진 혈당을 빠른 시간 동안 높여줄 수 있는 설탕을 잔뜩 바른 도넛과 감자튀김에 입맛을 다시도록 한다.

진짜 놀이를 빼앗기고 대신 가짜 놀이에 탐닉하면서, 가짜 배고픔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우리의 미래세대가 가짜 배고픔과의 전투에서 이기도록 하는 길은 학교에서, 집에서 그들에게 진짜 놀이를 되찾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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