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비단안개, 소월
상태바
정선, 비단안개, 소월
  • 김석영 시인·수필가
  • 승인 2019.04.04 15: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석영 시인·수필가

봄볕의 간지러움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한낮에 오랜 문우가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강가에 와있다며 사진 여러 장을 보내왔다. 봄볕을 쬐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니 지난해 세밑에 짬을 내어 벌였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김소월의 시노래 '비단안개'에다 재작년 겨울에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일대를 찾아가서 찍은 사진들을 이어 붙이고 시 노랫말을 적어서 조촐한 노래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 동영상시청 채널 담벼락에 올렸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구절리까지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레일바이크를 타고 내려오며 겨울 정선의 산하 이곳저곳을 찍은 사진도 사진이었지만 사진에 어우러지는 노래를 만난 영상을 만들고 보니 시와 노래와 사진을 뛰어넘는 또 다른 경지가 열리는 듯했다.

사실 사진 재생시간 조절이 안 되는 동영상 편집프로그램으로 만든지라 얼기설기 엮어놨어도 노랫말과 사진의 타이밍이 제대로 맞질 않아 어디 내놓기에는 부끄러운 영상이다. 하지만 그걸 만든다고 꼬박 반나절이 걸린 노력이 스스로 가상해 큰맘을 먹고 담벼락에 걸어놓았다. ‘비단안개’ 노랫말에 나오는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마귀로” 목을 매는 “젊은 계집”의 모습이 아우라지 강가에 서있는 사진 속 소녀상의 모습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은 기대 이상이었다. 전체적으로 봐도 시와 노랫가락이 사진 속 풍경과 곧잘 어울린다. 김소월의 시 전편에 녹아있는 한(恨)의 정서가 어떻게 이 노래에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지 아리송해질 정도는 아닌 듯하다. 그만하면 나는 흡족했다.

소월의 시는 그의 삶이 온통 그랬듯이 눈물과 회한과 그리움과 죽음의 변주로 하여 절절하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일본인 노무자들에게 폭행을 당한 후에 정신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가족사의 그늘은 소월의 삶 전체를 짓누른 아픔이었다. 그는 결국 서른의 고개를 갓 넘자마자 복어 알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돌발적인 행동이라기보다 오랫동안 그의 삶 가운데 똬리를 튼 의욕 상실과 무상감의 자연스런 귀결이었을 것이다. 그의 시편은 대개가 그러한 좌절과 상실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 시 '비단안개' 또한 그렇다.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계집’의 한은 오롯이 소월 자신의 것이다. 민요작가 황옥곤이 시에 붙인 가락은 그러한 시의 정서를 더욱 애절하고 곡진하게 만들어 시와 노래를 애당초 한 몸인 것처럼 만들었다.

봄날의 밝고 명랑하고 희망찬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엊그제처럼 봄날에 함박눈이라도 쏟아질라치면, 눈 쌓인 양지에 따스한 햇살이라도 머물러 절로 눈가에 눈물이 돌고 알 수 없는 설움이 턱밑까지 올라올라치면 이 노래 ‘비단안개’를 듣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소월의 한이 마냥 슬픔과 좌절의 정서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이 그렇듯이 상실의 아픔은 큰 것이지만 첫사랑은 삶을 새롭게 이어나가게 만드는 힘이자 원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며 이별의 슬픔을 반어적으로 승화하고 있듯이 ‘비단안개’는 “영이별 있던 날도 그런 날”이라며 ‘영원히 그만둘 수 없는 사랑의 지극함’을 다시 한 번 더 반어적으로 틀어서 노래하고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들어보아라. 소월이 우리에게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기막힌 역설이다. 소월 자신은 자진해 죽고, ‘젊은 계집’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우리는 기필코 ‘비단안개처럼 영롱한’ 우리의 봄날을 의연히 살아가라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