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풍물의 산증인 ‘김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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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풍물의 산증인 ‘김기화’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4.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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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일하며 22년째 청산면민속보존회 이끌어
군민대상 수상자의 소원 “실내공연장 건립”
옥천군풍물연합회 초대회장 김기화 씨

김기화(60) 씨는 자신을 도배사라고 말했다. 청산면 지전리 29-2번지에 김 씨와 그의 아내 윤은영(58) 씨가 운영하는 ‘김기화 인테리어’가 있다. 도배하고 깨끗하게 정리 작업까지 해주고 나올 때면 기분이 그렇게 좋아질 수 없다는 김기화 씨의 여유로운 삶의 방식은 22년 동안 풍물단을 이끌고, 전통문화를 가까이하며 살아온 그의 풍요로운 문화적 소양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성면 구음리가 고향인 김 씨는 청산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부터 여동생 둘과 함께 학교 가까이에서 자취생활을 했다고. 아버지(김성복‧90)와 어머니(안도순‧83)는 지금도 청성 고향집에 살고 계신다. 장남이었던 김 씨는 수원공업전문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 왔다가 다시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께서 고향에 있으라고 직접적으로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고향에 남아 농사채를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셔서 뜻을 거스르고 다시 올라갈 수 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결혼 후 청산의 지금 있는 상가에서 ‘학생백화점’이란 문구사를 하며 두 아들을 키운다.

김 씨가 풍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39세 때다. 그는 1997년도 청산면 주관으로 풍물교실이 청산문화의 집(현 청산청소년수련관)에서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처음에 갔을 때 남자가 한 명도 없어 그대로 돌아왔다. 아내의 권유로 용기를 내 찾아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 그는 풍물단에 들어가 처음 상쇠를 맡았다.

1997년 12월 5일 50여명의 회원이 모여 칠보단장 농악대를 창립했다. 이후 2012년 10월 1일 ‘청산면민속보존회’로 명칭을 변경, 지금까지 회장을 맡아온 것.

특히 청산 풍물단은 ‘청산면 정월대보름 지신밟기’를 전수해 이를 통해 2012년에 도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이듬해 전국대회에서 동상과 입장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또한 그는 9개 읍·면 농악단체인 풍물연합회를 만들고 초대회장을 역임한다. 옥천의 풍물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2007년 ‘제1회 풍물연합회장기차지대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올해 청산의 생선국수축제와 연계해 축제 전날인 지난 13일 치러졌다. 현재까지 20회를 이끌어오며 옥천의 풍물을 활성화 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그는 2013년 문화부문 옥천군민대상을 수상한다. 지난해 군민의 날에는 야외공연장에서 문화부문 군민대상을 받은 자격으로 군민헌장낭독을 했다.

이뿐 아니라 청산의 각종 노래자랑, 구읍벚꽃축제, 백중씨름대회, 총동문회 등 각종 행사에서 사회를 맡아 진행하고, 13년 동안 청산면 자율방범대원, 학교운영위원장, 청산면향토회장, 청산면민속보존회 등 각종 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김 씨의 다재다능한 재능은 부모님으로부터 대물림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장구를 쳤고, 아버지는 동네에서 상여소리를 30년 동안 맡아 해왔다고. 그의 아들(김창호‧31) 역시 학창시절 사물놀이반에서 활동했다. 3대가 장구, 꽹과리 등 풍물을 하는 집안으로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 씨는 “지역의 안타까운 점은 무엇보다 문화예술이 메말라 있고 다 같이 모여 공연하고 관람할 수 있는 공연장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우천 시나 겨울에 공연을 할 수 있는 적당한 실내공연장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문화예술을 함께 즐기면서 이웃과 주민들이 놀이하고 대화하며 웃고 즐기는 문화예술이 중심이 되어가는 사회구조가 될 때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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