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학의 선구자 ‘정구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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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학의 선구자 ‘정구충’ 박사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4.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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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가·사회활동가로 활발한 활동
“생명은 존귀한 것, 성실·경건 하라”

△옥천의 인물 정구충 박사
한국의학의 선구자 정구충, 그는 대한제국 의학계에서 추앙받는 외과의사다. 계몽가인 동시에 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가 서러움에 한 맺힌 세월을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을 위해 병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나라 잃은 약자로서 강제철거 당한다. 의사이면서 집필, 학교 이사직, 건국준비위원회, 군정청 자문위원회, 적십자 지사, 수해대책위원회 등 그가 한 사회 활동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울러 고향을 위해 충북도민회와 장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출생과 고향
정구충 박사의 본관은 영일정(迎日鄭)씨 문정공파 28세손으로 1895년 11월 3일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에서 태어났다. 정구충 박사의 자는 경진(庚進)이며 호는 소정(素庭)이다. 26세손 조부 정복(復)공은 익산 군수를 지냈으며, 27세손 부친 일용(鎰容)공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진사관계에 들어가 김해 군수를 지내고,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살았다. 일용공은 한산이씨와 혼인해 장남 정구창과 차남 정구충 박사 그리고 삼녀를 두었다. 정구충 박사는 생후 한 달 만에 모친을 여의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며, 공화당 총재를 지낸 사촌형 정구영 씨의 어머니인 다섯 번째 작은어머니 젖을 먹고 자랐다.

△학창시절
정구충 박사는 1904년 9살 때 고향을 떠나 부친이 계신 서울로 올라갔다. 계산학교를 졸업하고 한성고등보통학교를 1913년에 졸업했다.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1921년 오사카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오사카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했다. 1928년 다시 오사카의과대학의 결핵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32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의사의 길
1923년 경상북도 안동도립병원 외과과장, 1925년 황해도 해주도립병원 외과과장, 1927년 평안북도 초산도립병원 외과과장을 역임했으며, 1930년 1월 오사카조선무산자진료소를 설립했다. 1933년 서울 종로3가에서 외과의원을 개원했다. 1935년에는 한성이사회 회장이 됐다. 1946년 대한외과학회회장, 1953년 대한의학장, 1958년~1983년 대한외과학회 자문위원, 1959년 대한의학협회 회장, 1959년 6년간 사단법인 대한결핵협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1953년부터 5년간 세브란스의과대학 강사로 재직했고, 1956년 서울대학교 후원회 회장직을 맡았다. 1985년에는 국제외과학회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바람직한 의사상
정구충 박사는 어느 신문 지상에서 “의사는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사회 여러 분야에서 도덕성이 강조되는 부분이 의사”라고 말한다. 이어 “흔히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고 하는 것 같다.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생명은 존귀한 것으로 알고, 환자의 병을 돌보는 성실하고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오늘날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의사상”이라고 전한다.

△옥천읍 마성산 자락에 묻히다
정구충 박사는 무속신앙이 왕성하던 당시 대한제국의 현대의학 발전을 위해 공헌한다. 또한 여성들을 개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는 1984년 월남장을 수훈했고, 이듬해에는 과학기술상을 수상했다. 외과학계 거목이며 사회 저명인사였던 그는 91세 일기로 1986년 12월 8일에 작고했다. 그의 묘는 옥천읍 마성산 밑자락 구읍 저수지와 옥천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에 묻혀 있다.

△집필자-지옥임 수필가
지옥임(74) 수필가는 “옥천향토사연구회 회원으로 집필 의뢰를 받았다. 알려지지 않은 분이어서 자료를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정구충 박사의 지인들 정씨 문중의 총무님과, 사촌 정구영 전 국회의장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중앙도서관, 대전한밭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했다. 자료를 모으고 정구충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현대의학의 선구자로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분이 옥천의 인물임이 자랑스러웠다. 백프로 완벽하게 그분의 삶에 대해 쓰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아는 데까지 집필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이렇게 훌륭한 분이 옥천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집필 동기와 소감을 전했다.
지옥임 수필가는 옥천 동이면 우산리가 고향이다. 결혼해 인근 대전에서 살고 있지만, 옥천문인협회, 옥천향토사연구회 회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 작가는 고향 옥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사람들이 떠나며 빈집이 늘고 사라져가는 고향이 안타까워 20년간 마을 지명에 대한 자료를 모아 수필집 ‘지매’와 오랫동안 한복집을 운영하며 집필한 저서 ‘바람의 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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