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가꾸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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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가꾸는 마음
  • 김영범 작가
  • 승인 2019.05.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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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범 작가

꽃샘추위가 한창인 3월 중순, 겨우내 비어 있던 시골 농가를 찾았다. 봄 농사를 준비하는 동네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다. 밭에 거름을 내고 펴고, 밭두둑에 웃자란 잡목을 치고, 어떤 이들은 벌써 봄나물을 캐는지 바구니를 끼고 들로 산으로 분주히 오르내린다.

나도 봄기운에 들떠 마당가를 둘러보았다. 양지바른 곳에는 푸른 풀빛이 어른어른 돌았다. 혹시나 해 담장 옆으로 갔다. 담장 아래 해마다 꽃이 피어오르던 그곳에 수북이 덮여있는 검불을 헤쳤다. 옳거니. 약 오른 새싹이 연한 물빛을 머금고 불쑥불쑥 돋아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 생전에 당신이 손수 심어 놓은 작약이었다. 탐스럽게 타오르던 꽃잎이 당신의 기제사 때만 되면 하염없이 흩날리는 통에 그 애달픔을 달래기 버거웠다. 그래서였을까. 시집간 누이는, 그예 몇몇 포기를 떠다 자기 집 정원에 심었다 한다. 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건만, 솟아오르는 촉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들판을 누비며 소를 몰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때다. 저만치서 수더분한 중년의 아낙이 엉거주춤 선 채로 나를 바라보더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쭈뼛쭈뼛 내게로 다가온다. 얼굴은 작약 꽃만큼이나 붉어 있다.

“그거, 그거, ……, 좀 나눠줄 수 있어요?”

꽃잎처럼 가늘게 떨리는 어눌한 목소리. 아낙의 눈길은 방금 검불 헤쳤던 그곳에 머물렀다.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작약 싹이 돋아 오른 곳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꽃이 참 예뻤어요.”

아하, 아낙은 자주 내 집 마당 앞을 지났던 모양이다. 오뉴월 붉게 타오르는 작약 꽃 앞에 머물다 가곤 했으리라. 활짝 피어오르던 학창시절을 떠올렸던 것일까. 그리운 친정 식구들을 떠올렸던 것일까. 아니면 나처럼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사로잡혀 있던 것일까. 내밀한 아낙의 마음을 알 길은 없으나, 그의 집 앞에 작약을 옮겨 심어 가꾸고 싶은 게 분명했다.

“서너 뿌리만 주세요.”

나는 삽자루를 들고 포기가 상하지 않도록 한 삽 푹 떴다. 어디 사시는 누구냐고 물으니, 저 언덕 너머 은행나무집 박 씨네 며느리란다.

“아 ……. 그 은행나무집이요.”

오래된 은행나무가 서 있는 그 집을 어슴푸레 떠올려본다. 그러나 그 은행나무집에 살던 사람과 아낙이 맺은 인연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내 처지란, 고향을 떠난 지 40여년이 훌쩍 넘은 터라 그 집은 물론, 동네에 어떤 이들이 들고났는지도 제대로 아는 바 없으니, 아낙에게 말을 건네 그 연이란 것을 캐어물을 깜이 못되었다. 그저 그러냐고 고개만 끄덕일 뿐. 작약 포기를 나누는 내내 아낙은 옆으로 비켜서서 돋아 오르는 새싹을 바라보고 있다. 행여나 한 뿌리라도 다칠까 봐 조신한 눈빛만 슴벅거린다.

나는 작약 포기를 정성스레 포댓자루에 담았다. 아낙은 고맙다는 말 대신 봄바람 같은 미소로 그걸 건네받았다. 벌써 작약이 피어오를 듯한 얼굴. 남몰래 몇 포기 떠갈 수도 있으련만, 그깟 것 몇 포기 떼어간다고 나무랄 사람 아무도 없으련만, 꼭 주인의 허락을 받아 얻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남의 것을 함부로 탐내지 않는 꽃 같은 이의 마음이랄까. 고맙다는 인사이리라, 수줍은 묵례가 하르르 떨어지는 작약 꽃잎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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