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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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강의 추억
  • 동탄 이흥주 시인·수필가
  • 승인 2019.06.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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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이흥주 시인·수필가

오십년도 넘은 금강 가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상황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게 있었다. 강가 사람들은 한여름에 더위를 피하여 모두 강가로 쏟아져 나온다. 선풍기가 없는 시절이었으니 부채하나로 더위를 쫓다가 참기 어려우면 강으로 나가 시원한 물에 멱을 감는다. 이보다 더 좋은 피서법이 어디 있을까. 강가 사람들은 이런 복을 누리고 살았다. 이때 진풍경이 벌어진다. 백주에 어른들이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그땐 강가 어느 곳이건 같이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저만큼 옆에는 아낙네가 빨랫감을 이고 나와 토닥토닥 방망이질을 하고 있는데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다. 서로 소 닭 보듯이 제 할 일만 한다. 한쪽은 빨래에, 한쪽은 시원한 멱 감기에. 모래밭에다 바지적삼을 벗어놓고는 알몸으로 보무도 당당히 물로 걸어 들어간다. 그나마 중요부위는 손으로 가리긴 한다. 물속이 얼마나 시원한지 큰소리로 “어 시원하다!”란 감탄사를 내지르며. 강가에 나온 남자들은 예외 없이 다 벌거숭이다. 여름날에는 강물에고 모래밭에고 벌건 벌거숭이 천지였다. 요즘 해수욕장 풍경은 갖가지 수영복 색깔로 총천연색이지만 그전엔 모래밭이 벌건 살색 일색이었다. 또 백주에 물가에서 벗고 노는 건 남자뿐이었다는 게 지금 수영장과 다른 점이었다.

수정처럼 깨끗하게 흐르는 강물에 알몸으로 뛰어들면 그 시원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피부에 와 닿는 찰랑이는 맑은 물의 감촉은 앞으로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전설이 되었다. 지금 돈 내고 들어가는 수영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닥에 하얀 모래나 잘디잔 자갈이 깔린 맑은 강물에 알몸을 담근다고 상상해보라. 물도 지금의 물하곤 하늘과 땅 차이다. 그냥 벌컥 벌컥 마실 수 있었으니까.

낮엔 남자만 특권을 누렸지만 밤이 되면 남녀가 다 같이 강으로 나간다. 서로 떨어져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멱을 감는다. 남자는 후다닥 씻고 나오지만 여자들은 진을 다 빼야 나온다. 재잘재잘 깔깔대면서 무슨 목욕을 그리 오래하는지 모를 일이다. 목욕을 마친 사람들은 너른 모래밭에 앉아 이슥하도록 이야기꽃을 피운다.

강가 사람들은 전부 수영선수들이었다. 언제부터 물에 뜨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수영을 하게 된다. 요즘 여름날 강가에는 익사 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우리 고장에도 매년 거르지 않고 익사 사고가 난다. 강가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는 경우는 없다. 나룻배 전복사고로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죽은 경우는 있었어도 수영을 하다 죽는 건 못 봤다. 강의 생리를 잘 알고 수영도 잘하기 때문이다. 익사 사고는 수영이 미숙한 사람들이 만용을 부리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물을 우습게보다가는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잃기 십상이다.

강가엔 항상 토닥토닥 빨래방망이 소리가 들렸다. 빨랫감을 다라에 담아 이고 강에 나가 방망이로 두드려 빨래를 한다. 합성세제는 아예 없고 비누도 귀하던 시절 무명옷들을 잿물에 삶아서 강에 가지고 나가서 빠는 것이다. 어느 동네 건 매일 몇 사람씩 빨래하는 사람이 보이고 방망이 소리가 들리는 게 강가 풍경이었다. 강가 모래밭에는 넓적한 돌을 나란히 놓은 빨래터가 동네마다 있었다. 그곳엔 항상 토닥거리는 빨래방망이 소리가 운치를 더했다. 지금 생각해도 안 된 것이 겨울에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해도 손이 맨손이었다는 것이다. 고무장갑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던 시대라 빨갛게 얼고 곱은 손에 방망이로 두드려 빨래를 했다. 집에서 나갈 때 빨래 삶은 뜨거운 물을 같이 담아가지고 가서 거기다 시린 손을 담그며 겨울 빨래를 했다. 그러나 그 물은 금방 식고 손은 빨갛게 얼 수밖에 없었다.

강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린 게 또 있다. 배고프던 시절도 강에만 나가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으니 단백질 보충은 잘한 셈이다. 그 시절도 디스토마라는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강물은 그냥 마셔도 탈이 없었다. 농약이나 대규모 축사, 공장 등 오염원이 없었으니까. 잡은 물고기는 회를 떠서 고추장에 버무려 먹었는데 이 맛이 기가 막혔다. 지금도 못 잊어 민물고기 회를 먹고 싶지만 충 때문에 안 된다. 그래도 양식한 송어 회는 먹는다.

여름에 강엘 가보면 거기서 잡은 올뱅이*나 민물고기는 먹기가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린 오늘도 그런 것들을 맛있게 먹으며 이렇게 살고 있다. 하얀 모래밭엔 잡초만 무성하고 그게 자취도 없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다. 이제 새하얀 모래를 어디서 구경하겠는가. 봄날 연두색으로 맑았던 강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다 꿈속으로 사라진 전설일 뿐이다.

*올뱅이- 다슬기. 나는 금강 가에서 반평생을 살았다. 우리 옥천에서는 다슬기를 ‘올뱅이’라 불렀다. 그것이 어떻게 ‘올갱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강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쉬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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