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먼저 느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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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먼저 느껴주세요
  • 박은주 시인
  • 승인 2019.06.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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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인

햇빛 따사롭고 바람 살랑거리는 5월의 마지막 주말, 대청댐 잔디밭에는 어린 아이와 함께 놀러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나는 그늘에 앉아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몸짓, 얼굴 표정,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 일렁이는 그림자까지 하염없이 바라보다 오래 전 그곳에서 보았던 한 아이를 떠올렸다. 지금은 이십대 후반쯤 되었을 텐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날 나는 나무 데크 위를 걸으며 아름드리 나무의 진한 초록에 흠뻑 빠져있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답게 바람소리도 새소리도 나무 향기도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데 멀리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였는데 아빠한테 매를 맞는지 자지러지는 소리로 울어댔다. 엄마는 옆에서 그저 안쓰러운 얼굴로 보고만 있었다. 멀어서 얼굴은 자세히 안 보였지만 남자는 아이를 때리던 몽둥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아예 접이식 몽둥이를 갖고 다녔던 것이다. 아빠가 휘적휘적 먼저 걸어가니 아이는 울면서 따라갔고 엄마는 그 뒤를 따라갔다. 나는 너무 놀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들이 안 보일 때까지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아무리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 해도 나들이 나온 야외에서 몽둥이로 맞을 만큼 잘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건을 훔치거나 싸움을 한 것도 아닐 테고 어린애답게 떼를 썼거나 아빠와 마음이 맞지 않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달랐을 것이다. 공감하고 대화하며 해결할 수 있는 일에도 무작정 폭력을 휘두르는 어른들이 많다. 나는 가끔 그 아이가 생각난다. 그 남자도 어릴 때 맞으며 자랐을 테고, 아이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런 식으로 때리며 키우겠지. 자신이 보고 배운 대로 훈육할 테니 폭력으로 상처받는 아이들이 계속 존재할 것이다.

자신만의 훈육방식이라고, 내 새끼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그 말이 누구의 말이냐고. 자신만의 기준에 맞춘 ‘내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인데, 그 말이 객관적으로도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어쨌든 자신은 어른이고,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당신이 책임질 것도 아니니 상관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사춘기 딸이 말을 안 듣는다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묻는 어른이 있었다. 좋은 말로 설득해도 안 되고 미래를 생각하라고 협박해도 안 된다고 했다. 다 자기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 도무지 듣지 않는단다.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공감해주라고 내 의견을 말했다. 그 사람은 그래 갖고는 아이가 바뀌지 않는다며 아이는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오히려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하루에 30분이라도 아이와 눈을 마주하고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해서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예전에 우리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한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달라졌으니 아이들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지금 아이들은 지금 상황에 맞는 고민을 하고 그들만의 문화 속에서 갈등하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가 되어주려 하지 않고 학부모 역할만 하려고 한다.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면 그것은 자기 나이에 맞게 잘 자라고 있다는 신호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하라는 대로만 했다면 인류는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오래 전에 멸종하고 말았을 것이다. 끊임없이 다르게 행동하고, 반항하고 현실을 바꾸려 했기에 이만큼 발전한 것이다. 아이였을 때 나는 어른들 말에 불만 하나 없이 고분고분 따랐던가. 공부하라는 말에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만 하며 시험을 준비했던가.

아이의 기를 세워준다고 무슨 짓을 해도 야단치지 않는 것도 다른 형태의 폭력이므로 방치와 억압 사이 서로에게 맞는 길을 찾으려면 마음을 먼저 느끼고 상대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문제가 생긴 자리에는 답도 같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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