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

2024-09-05     장운철 기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한 단면을 말한다면 ‘자기중심적’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또 그에 따라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다분히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전파견문록>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린이들(유치원생 또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어떤 단어를 설명하고 어른들이 그것을 듣고 맞추는 게임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알아듣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많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왔던 내용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독자들도 한 번 풀어보기 바란다. 자, 아이들이 어떤 단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 엄마는 놀라고 아빠는 눌러요?
2) 이 사람만 가고 나면 막 혼나요?
3) 제가 100점을 맞으면 엄마 아빠가 하는 말?
4) 이게 없으면 노래를 못해요?
5) 이것은 언제나 출렁거려요?

각각의 문제를 풀 수 있겠는가? 답은 다음과 같다.

1) 바퀴벌레
2) 손님
3) 진짜야!
4) 시작
5) 아빠 뱃살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바퀴벌레’라는 단어를 설명해야 하는 어린이는 고민하다가 ‘엄마는 놀라고 아빠는 눌러요’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시작’이라는 단어를 본 또 다른 어린이는 ‘노래’와 연결시켜 설명을 했다. 어린이들은 최대한 잘 설명하려고 했지만, 어른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어린이들이 조금만 더 어른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면 보다 쉽게 설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른들도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자기중심적인 예가 어린 아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예들도 우리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너는 왜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모르냐! 답답하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간단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상대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찾아온 것 아닌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상대가 이해를 못하면 자신의 설명 부족의 탓도 있는 게 아닐까? 


“장난친 것 가지고 속 좁게 토라지냐!”라고도 한다. 주로 남녀관계에서 일어난다. 이때 장난은 자신에게만 해당된 것이다. 상대는 장난친 상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오해한 게 당연한 것 아닐까. 


최인철 교수(서울대 심리학)도 그의 책 <프레임>(21세기북스, 2007)에서 자기중심적인 세상을 잘 표현했다. ‘조명효과’와 ‘척 보면 알아’라는 논리로 재미있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늘 샴푸로 머리를 감았던 이가 어느 날 샴푸가 떨어져 비누로 머리를 감고 출근했다고 해 보자. 그는 계속해서 주변사람들이 자신의 머리를 쳐다본다고 의식을 하게 된다. 샴푸로 머리를 감은 것과 비누로 머리를 감은 것이 얼마나 차이가 날까?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러나 당사자는 계속해서 신경을 쓴다. 


또 하나의 예다. 출근을 위해 옷장문을 열고 “입을 옷이 없다”고 내뱉는 이가 있다. 옷장 안에는 자신의 옷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말이다. “이 옷을 입고 가면 며칠 전에 입었던 것이라 사람들이 금방 알아 볼 거야. 이것도 그렇구...” 


조명효과란 자신이 마치 TV의 스타가 된 것처럼 조명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실은 자신을 가장 많이 바라보는 이는 자기 자신인데 말이다. 


한 가지 실험이 이를 잘 입증해 준다. 보기에 약간은 민망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입고 한 대학생이 교실에 들어갔다. 한 시간쯤 있다가 나왔다. 이후 그 학생과 교실에 있던 학생들에게 각각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자신의 티셔츠를 얼마나 기억한다고 생각하는가?’와 ‘당신들은 조금 전 000학생이 입고 있었던 티셔츠를 기억하는가?’이다. 티셔츠를 입었던 학생들 50%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티셔츠를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8%뿐이었다. 


‘척 보면 알아’도 자기중심적인 세상을 잘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너를 척 보면 아는데, 너는 나를 연구해도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상대를 쉽게 평가한다. ‘글씨를 작게 쓰니 너는 소심한 사람이다’, ‘발라드 음악을 좋아하니 너는 창의성이 없는 사람이다’, ‘너는 B형이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이야’ 심지어는 ‘너는 라면을 먹을 때 면보다는 국물부터 먹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야’라고 분석해 낸다. 그리곤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에 대해서 말하면 과감하게 ‘틀렸어’라고 잘라낸다. 자신이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자기중심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지혜롭게 사는 법에 대해 옛 성인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교훈했다. 나의 땅과 상대의 땅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자는 말로 ‘상대의 입장에 서보자’는 의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진정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역지사지를 할 줄 알아야 상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전파견문록>에서 어린 아이들이 역지사지를 잘할 수 있었다면 어른들이 보다 문제를 잘 풀었을 것이다. 그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리 아이라고 하지 않는가?

 
역지사지를 못하면 선행을 베풀고도 욕을 먹을 수 있다. 배가 고픈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빵이 필요한 그에게 멋진 양복을 사주면 어떨까? 역지사지가 없는 선행은 마치 ‘꽃으로 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지사지는 우리네 삶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