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막 건너는 방법

2024-09-12     장운철 기자

 

‘예측불허(豫測不許)’의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앞일을 좀처럼 알기 힘들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감(感)을 잡지 못할 때도 많다. 하긴 5분, 아니 1분 뒤의 일조차 알지 못하는 게 우리 인간의 능력(?)이지 않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사막’으로 비유하면 어떨까? 강렬한 태양과 뜨거운 공기가 우리 인생의 목을 휘감는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래 알갱이들이 또한 우리의 발목을 땅 아래로 잡아당긴다. 갈증이 난다. 피곤하다. 힘들다. 지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이러한 사막을 건너가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치 사막과 같은 인생을 한평생 살아가려고 한다면 또한 어떻게 해야 할까? 비법이라도 있을까?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스티브 도나휴, 김영사, 2005)이라는 책이 흥미를 끈다. 저자 스티브는 실제로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다. 사막에서 겪어야 할 일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그 가운데 터득한 지혜를 6가지로 정리했다. 그는 사막 한복판에서 사막을 건너간다는 것과 인생살이가 매우 유사함을 깨달았다. 변화무쌍한 상황을 뚫고 가야한다는 바로 그것이다. 사막에서 얻은 지혜가 우리네 인생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3가지 방법을 살펴보자.  

 

1. 나침반을 따라가라.


인생 남감할 때가 많다. 진로, 결혼, 자녀양육, 노후 등의 삶의 영역에 대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한다. 그리고 준비한다. 마치 여행을 떠날 때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을 나오면 어떠한 계열의 직장에 취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나 결과는 꼭 예상한 대로만 나오지 않는다. 변수가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누구나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상대와 결혼하면 정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여기에도 경우의 수는 엄청 많다. 자신의 심장이라도 빼어 줄만큼 사랑했다는 커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수로 헤어지는 일이 주변에 널려있다. 자녀양육과 노후 준비 등의 영역에서도 다르지 않다.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는 말은 사막 여행에서 ‘지혜’다. 사막의 지형지물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있던 길이 없어지고, 없던 길이 나타난다. 지도의 역할이 한정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모래바람에도 변하지 않은 바로 그것, ‘나침반’이다. 어제 보았던 모래언덕을 보고 가면 안 된다. 지나온 모래골짜기를 보고 방향을 잡아서도 안 된다. 오직 나침반을 의지해서 걸어가야 한다. 나침반이 없으면 지도나 안내지도 소용이 없다. 그럼 우리네 인생살이에 있어서 나침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위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진실하라, 인내하라, 그 순간에 몰입하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가져라, 긍정적인 마음 자세를 가져라, 하나님을 믿어라 등과 같은 말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방향 지침으로서 인생과 변화의 사막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안내해 준다.”(p.41) 


생활의 원칙, 인생의 근본 기준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사업 실패 등으로 경제적 궁핍의 상황에 빠진 이가 소망, 목표, 목적을 세운다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빚 청산, 재기할 자본 마련 등일 것이다. 그러나 나침반이 없다면 그 소망을 이루는 게 힘들다. 그에게 나침반의 역할은 무엇일까? 수학 기호로 표시한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지출〈수입’이다. 지출이 수입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주는 교훈은 남다르다.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지출을 그 이상으로 대폭 줄여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랑하며 사는 것, 신앙을 갖는 것 등이 바로 인생에 있어서 나침반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2. 오아시스


오아시스를 만나면 무조건 쉬라는 게 저자의 두 번째 당부한다. 만약 체력의 여유가 있다고 판단해 쉬지 않고 다음 오아시스까지 간다면 그곳에서 회복하는 데 4배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여행에서 ‘쉼’은 악세사리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이라는 말이다. 정기적인 쉼을 가져야 한다. 예상한 때에 오아시스가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오아시스를 만들어서라도 쉼을 가져야 한다. 쉼 없이 사막을 건넌다는 것은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불나방과 같은 자살 행위와도 같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하루 종일 수고한 교사에게는 말이 잘 통하는 동료들과 수다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게 좋다. 그게 바로 오아시스다. 혼자서 일을 하는 직업인 역시 많은 이들과 교류하는 취미가 절실히 필요하다. 컴퓨터 일을 하는 이는 화분 가꾸기, 서비스업으로 과도한 친절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배구나 스쿼시 등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스포츠, 공무원이나 교사 등 규칙적인 생활의 직장인에게는 멋진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여행이 적지 않은 오아시스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3. 타이어


‘아이고 이런~’ 자동차 뒷바퀴가 그만 사막 한 가운데 모래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운전자는 가속기를 밟으며 핸들을 이리저리로 움직여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마다 바퀴는 오히려 더 깊숙이 모래에 뿌리를 내렸다. 삽을 이용해 바퀴 앞부분에 모래를 다져 넣기도 해보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사막의 태양 아래 자동차도 여행객들도 모두 짜증나고 지치기 시작했다.

이때 한 동료가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운전자는 고집을 부렸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며 자신의 방법을 고집했다. 태양은 비웃듯이 계속 이글거리고 있었다.  


자동차 경주 중 ‘락크롤링’(rock crawling)이란 게 있다. 속도 경기가 아니다. 4륜구동 짚차로 바위를 오르는 경기다. 집 크기만한 바위, 90도 가까운 경사 언덕을 엔진 소리 크게 울리며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는 경주다. 잘못하면 자동차가 미끄러져 뒤집히기도 한다. 이 경기의 요령 중 하나는 타이어에서 바람을 1/3정도 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타이어와 지면의 접촉면에 많아져서 미끄러지지 않고 힘을 많이 받아 바위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결국 운전자가 생각을 바꾸었다. 동료의 말대로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기로 했다. 그런 후 다시 가속기를 밟았다. 그러자 자동차는 굉음을 내며 모래 웅덩이를 박차고 올라왔다. 거짓말처럼 자동차가 그 웅덩이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타이어에서 바람을 뺀다는 것은 인생살이에서 우리들의 고집, 자아를 버림을 의미한다. 고집을 버리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린다. 그동안 내가 못 보았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