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 개발 2030년부터 상용화됩니다"
한양대 공과대학 오근호 명예 교수 인/터/뷰
“꿈의 소재인 초전도체 개발을 그동안 꾸준히 해왔습니다. 3-4년 후엔 모든 연구가 끝날 것으로 봅니다. 드디어 2030년 경부터는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실용화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과학계에 또 하나의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 봅니다.”
오근호 교수(86, 공학박사, 한양대 명예교수, 퀀텀에너지연구소 회장)는 옥천 죽향초등학교 41회(1952년) 졸업생이다. 대전중고와 한양대(요업공학, 세라믹공학)에서 65년에 학사,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석사, 시애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와이오밍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다가 모교 한양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 퇴임 직전까지 산업대학원장(공과대학원 초대 원장)으로 평생을 교육계에 헌신했다.
“옥천 생각이 자주 납니다. 죽향초 1학년 때 선생님을 아주 잘 만났어요. 유갑현 선생님입니다. 그분의 지도를 받으면서 ‘나도 커서 선생님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미국 대학 졸업 후 좋은 회사 취직 자리가 났을 때, 저는 교직의 길을 가게 되었지요. 월급은 3배 차이가 났었지만, 이후 지금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바로 그 초등학교 선생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오 교수는 크리스털 결정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크리스털은 현대인이 사용하는 각종 가전제품에 모두 사용되는 중요한 핵심 재료다. 1990년 (사)한국결정학회를 창설 회장을 맡았다. <한국 결정 성장 발전사>(오근호, 한림원, 2023)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두 번째 책 <현대인의 크리스털>을 집필중에 있다.
“저희 ㈜퀀텀에너지연구소는 밴처 회사입니다. 연구원이 8명입니다. 초전도체가 상용화되면 제일 먼저 양자컴퓨터에 사용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먼저 사용될 것으로 봅니다. 지난 2003년 제가 <상온상압 초전도체 개발>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을 때, 미국 실리콘벨리 한 회사에서 1억불을 제시하면 같이 연구하자고 제안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 거절했지요. 아마도 많은 곳에서 저희 연구를 주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오 교수의 ‘초전도체 개발은 물론 곧 상용화된다’라는 말에 기자의 귀가 번쩍 띄었다. 초전도체는 과학계의 꿈의 소재라고 불리운다. 이제껏 이론으로 존재해왔다. 또는 절대 온도(-183℃)나 엄청난 고압의 조건에서나 작동되는 실험 중인 물질이다. 그것이 현재의 온도와 압력에서 실용화된다는 게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자기부상열차’ 등을 언급하며 실용화의 예를 질문했다. 그러나 오 교수는 먼저 양자컴퓨터에서 사용될 것이라 언급했다. 그것이 진행된다면 한 분야를 넘어 대한민국의 혁신에 앞장서게 될 일이다.
오 교수는 고향 옥천에 종종 내려온다. 전순표 관장(국사편찬위원회충북지회장)과 식사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오 교수가 한양대학교 교수로 있을 때, 전순표 관장의 시집 <옥천에 살으리랐다>를 읽고 고향 생각이 꿈틀거렸다. 그 시집에서 고향의 사투리가 불쑥 풍겨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오 교수와 전 관장의 사귐이 시작됐다. 전 관장은 때때로 옥천의 농산물(감자, 완두콩 등)을 오 교수에게 보냈다. 오 교수는 그 정성에 보답할 겸 종종 옥천에 직접 내려와 전 관장과 추억을 나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우리집은 소위 만석꾼이었어요. 제법 큰 부자였지요. 대대로 내려오는 선비 집안이었구요. 자식 교육에 엄했어요. 제 아내가 ‘당신은 미국에서 21년을 살고 왔는데, 아직도 옥천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제 사고방식이 옛날 스타일인가봐요.”
오 교수 아내, 최정화 여사는 서울대 가정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나라여자대학에서 의상과학 전공으로 석사, 일본 고베국립대학 의과대학 의상학으로 의학박사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 이과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오 교수가 옥천에 살게 된 것은 증조부 오상규 님 때문이다. 증조부는 1908년 서부학회 창립멤버였다. 1909년엔 2대 회장을 역임했다. 애국 계몽운동과 독립운동가 뒷바라지를 해왔다. 1910년 8월 한일합방으로 서북학회가 폐쇄되고(10월), 그때 증조부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옥천으로 내려왔다. 증조부는 한국 최초 물리학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죽향초등학교 개교 70주년 되는 해에 정식으로 학교를 방문해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제가 입학하고 다녔던 교실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에요. 지금 근대 박물관으로 말이죠. 옛날 생각이 저절로 떠올려졌어요. 저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담임선생님을 모두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