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노릇 가르쳐 준 아버지의 길 따라 “고향 옥천의 안전을 설계하고 싶다”
오재송 대표 | 종합건축사사무소 태산 인/터/뷰
공업사 집 아들에서 번듯한 건축사로 성장한 오재송 종합건축사사무소 태산 대표를 만났다. 13년의 인고 끝에 얻은 건축 기술로 고향의 안전을 설계하고 아버지의 나눔 정신을 이어 재능 기부를 꿈꾸는 그의 삶을 통해 옥천 청년들의 비전과 정체성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기름 냄새와 엔진 소리가 가득하던 ‘태양카 정비 공업사(현 한양오토카)’ 2층 주택. 그곳에는 도면 위에 꿈을 그리던 어린 소년이 있었다. 옥천의 골목길을 누비며 자연을 체험하고 정직하게 땀 흘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 소년은 이제 어엿한 세 아이의 아빠이자 건축사로 성장했다. 대전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종합건축사사무소 태산’의 오재송(37)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13년의 인고 끝에 건축사라는 산 정상에 올라선 그를 만났다.
오 대표가 건축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기술적인 분야에 밝았던 그는 수학의 정확함에 매료되었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건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대학 5년, 실무 4년, 수험 생활 4년까지 도합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특히 실무와 세 아이의 육아를 병행하며 보낸 시간은 매일이 자신과의 사투였다. 오 대표는 “낮에는 설계 현장에서 뛰고 밤에는 잠든 아이들 곁에서 새벽까지 책상을 지켰다”며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든 가장 단단한 기초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건축을 ‘사람을 돕는 서비스업’이라고 정의한다. 권위적인 설계자보다 의뢰인의 고민을 해결하는 ‘친절한 기술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특히 오 대표는 최근 안전 규정이 강화된 ‘건축물 해체(철거) 계획서’ 분야의 전문가다. 광주 학동 사고 이후 해체 인허가가 매우 까다로워졌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위험까지 설계하는 정밀함으로 신뢰를 얻고 있다. 현재 옥천 소재 공장의 해체 공사 인허가를 직접 담당하며 고향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오 대표의 신념은 고향 옥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이면 구일리에서 태어나 읍내로 자리를 옮긴 그는 죽향초를 다니며 구읍의 골목길을 누볐다. 정지용 생가와 육영수 여사 생가 앞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고 사슴벌레를 쫓던 풍요로운 체험은 그에게 정서적 힘을 선물했다. 이 건강한 생명력은 갑작스럽게 대전 송촌중학교로 전학을 가 낯선 도시 생활에 적응해야 했던 시절에도 큰 버팀목이 되었다. 치열한 도시의 경쟁 속에서도 옥천에서 다진 단단한 마음과 추억 덕분에 그는 흔들리지 않고 건축가라는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인생의 스승은 아버지 오병구(한양오토카 대표) 씨다. 오 대표는 “첫아이를 낳았을 때 아버지가 ‘부모 되기는 쉽지만 부모 노릇 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하셨다”며 “그 말씀의 무게를 이제야 알 것 같다”고 전했다. 지금도 옥천에서 연탄 나눔 봉사를 이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그는 전공을 살린 ‘재능 기부’를 꿈꾸고 있다. 아버지가 연탄으로 온기를 나누듯 자신은 도면으로 어려운 이웃의 주거 환경 개선해 참여하고 싶다는 포부다.
이제 막 건축사를 시작한 오 대표의 시선은 이미 먼 미래를 향해 있다. 그는 옥천의 후배들에게 “어떤 일이든 최소 10년은 한 우물을 파 보라”며 “사람이 하고자 하면 못 할 일이 없다”는 격려를 남겼다. 공업사 집 아들에서 도시의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로 우뚝 선 오재송 대표. 그의 청사진에는 건물의 높이가 아닌, 고향 옥천을 향한 사랑의 깊이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