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수(45)-김석현(金奭鉉) 군수

음직으로 하위직 두루 거쳐 고종 때 1878년 옥천군수 부임 『비변사등록』 1890년(고종 27년) 형조판서에 올라

2026-03-26     전순표 시인, 국사편찬위원회 충북 부회장(사료조사위원)


김석현(金奭鉉) 옥천군수는 1878년(고종 15년) 8월 24일에 부임하였다. 그 당시 김 군수는 김해부사에 재임하고 있다가 홍정유(洪鼎裕) 옥천군수와 서로 맞바꾸는 인사이동으로 옥천군수에 부임하였다.


음직으로 형조판서 입지전적 인물

김석현 군수는 조선 후기 음직으로 처음 관직에 진출해 옥천군수 등 내외직을 두루 거치고 고종 27년에 형조판서 오른 문신이다. 그의 자는 대여(大汝)이고 본관은 광산 김씨(光山金氏)이다. 1846년(헌종 12년) 식년시 진사 3등 65위에 합격하였다.


헌종 때 처음 현릉참봉 관직 진출

김석현 군수는 헌종 14년(1848년) 현릉참봉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2년 후에 왕실에 필요한 의복이나 식품 등을 관장하는 제용감 부봉사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같은 해 12월에 상서원(尙瑞院) 직장, 토목과 영선을 맡아보던 선공감(繕工監) 감찰을 역임했다.

1852년 전성판관, 1853년 장생령 전생판관, 1854년 강원도 김화(金化)현감을 각각 지냈다.
1858년(철종 9년) 9월에 내직으로 돌아와 5위(五位) 종6품인 부사과를 역임하고 한 달 후에 호조의 출납을 총괄하여 예산, 결산을 하는 청요직 호조정랑에 임명되었다. 

3년 후 1861년(철종 12년) 4월에는 충청도 부여현감에 부임했고 같은 날 이돈상(李敦相)은 옥천군수를 제수받았다.


고종 초기 황해도 배천군수 역임

1865년(고종 2년) 3월 황해도 배천군수(白川郡守). 이곳 배천은 바로 중봉 조헌(趙憲) 의병장의 본관이다. 이후 김석현 배천군수는 1872년(고종 9년)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호조좌랑, 1873년(고종 10년) 호조정랑을 역임하고 1877년(고종 14년) 6월 전라도 용담현령을 지내고 1878년(고종 15년) 6월에 경상도 김해부사를 역임하였다.


1878년 고종 때 옥천군수 부임

1878년(고종 15년) 8월 24일 김해부사에서 옥천군수로 전임했는데 옥천군수 홍정유(洪鼎裕)와 서로 맞바꿨다. 『승정원일기』 1878년(고종 15년) 8월 25일 기사에서  <중략> 【원문】 김해부사 김석현, 옥천군수 홍정유 상환 (金海府使 金奭鉉, 沃川郡守 洪鼎裕 相換)

또 『승정원일기』 1889년(고종 26년) 9월 7일 자에 ‘신병이 있는 검서관 유흥석을 감하하고 후임에 김석현을 차하할 것을 청하는 규장각의 계’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또 규장각의 말로 아뢰기를 “검서관 유흥석(柳興奭)이 신병이 있어 직임을 수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니 감하하고 그 대신에 전에 천거되었던 김석현(金奭鉉)을 전례대로 취재를 생략하고 차하한 다음 해조(該曹)로 하여금 구전으로 군직에 붙이게 하여 관디 차림으로 항상 사진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기록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비변사등록』고종 27년(1890년) 12월 9일 자 기록에 김석현 옥천군수는 정2품 형조판서에 임명되었다.

 

김석현 형조판서 임명『비변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