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수(47)-조병문(趙秉文) 군수
충주·능주목사 역임한 조선 후기 헌종·철종 때 문신 삼척부사 때 선정, 암행어사 보고받고 포상 능주목사 승진
조병문(趙秉文) 옥천군수는 지방관으로 충주목사와 능주목사 등을 역임한 조선 후기 문신이다. 삼척부사 때는 고을을 잘 다스려 포상받고 승진시키라는 어명이 있었다.
그의 본관은 풍양 조씨(豐壤趙氏)이고 1807년 (순조 7년)에 태어났고 자는 덕래(德來)이고 아버지는 조태영(趙泰永)이며 부인은 이원규(李元奎)의 딸이다.
헌종 때 초시합격 관직 진출
조병문(趙秉文) 옥천군수는 헌종 9년(1843년) 2월에 초시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헌종 11년(1845년)에 처음 관직에 진출하여 건원릉 참봉을 제수받았다. 이어 1847년(헌종 13년) 내섬시 봉사, 1848년(현종 14년) 예빈시 직장을 지냈다.
철종 때는 1850년(철종 1년) 6월에 시장 내 물가를 조절하고 도량형 관리와 시전의 허가 및 운영을 관리·감독하는 평시서(平市署) 주부가 되었다. 그해 11월에는 악장원 주부를 거쳐 12월에 죄인 심문을 담당한 특별사법 관청인 의금부 도사에 제수되었다.
조병문 부사 포상·승진시켜라
1851년(철종 2년)에 외직인 지방관으로 나가 지금의 전북 익산시 지역인 함열현감에 부임하였고 1853년(철종 4년) 6월에 충청도 서산군수, 1855년 강원도 삼척부사가 되었다. 그러나 1857년(철종 8년) 11월에 평안도 맹산현감으로 강등되었다.
철종 8년(1857년) 11월 28일 자 『철종실록 9권』 기록에 의하면 “강원도 암행어사 이경호(李京鎬)를 불러서 접견하고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에 의하여 강원도 간성의 전 군수 이용학과 통천 군수 오치기, 평해 군수 홍우석, 전 군수 오규환, 울진 현감 서우순, 회양의 전 부사 유흥길, 양양의 전 부사 김상일, 영월의 전 부사 김진우, 인제의 전 현감 김현초, 상운의 전 찰방 김병주 등은 죄주라 하였다. 그리고 삼척부사(三陟府使) 조병문(趙秉文)은 포상하여 벼슬을 높여주라 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남원부사 이어 능주목사 승진
1858년 1월 종3품인 전라도(全羅道) 남원부사(南原府使)를 1년 4개월 재임하고 1859년 5월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이며 정3품 관직인 능주목사(綾州牧使)에 임명되었다.
1860년(철종 11년) 7월에 내직으로 조선시대에 대궐 내의 음식에 사용되는 미곡(米穀)을 수입하고 지출하는 일을 관장하는 책임자인 정3품 사도시정 (司䆃寺正)에 제수되었다.
옥천구읍 전통체험관 앞길에 불망비
다시 지방관으로 임명, 철종 11년(1860년) 8월 7일 충청도 옥천군수에 부임하였고 그 후 1861년(철종 12년) 4월 충주목사를 거쳐 철종 13년(1862년) 공주판관을 역임했다.
한편 옥천읍 구읍 전통체험관 앞길 비석군에 위치한 조 군수 영세불망비는 전면에 「郡守趙秉文永世不忘碑(군수 조병문 영세불망비)」라 음각되었다. 이 영세불망비는 1862년(철종 13년)에 세워졌고 크기가 높이(전고)가 127㎝, 비의 폭이 48㎝, 두께는 23㎝이며 석질은 화강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