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옷깃을 세우다·6화 - 한복의 품격으로 잇는 ‘헌신’의 향기
육영수 여사 서거 52주년, 멈춰 선 시간을 넘는 고백
1974년 8월 15일 국립중앙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은 축제의 열기로 가득했지만 예상치 못한 한 발의 총성이 순식간에 모든 시간을 멈춰 세웠다.
육영수 여사의 서거.
나는 그해 여름의 그 정적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흘 뒤 영결식은 온 국민의 통곡 속에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그날의 기록들은 고인을 두고 ‘자리의 높이를 책임의 높이로 여기며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졌던 분’이라 전했다. 여사가 떠나고 이듬해 시인 박목월이 그녀의 전기를 썼다. 청와대 안에서도 이면지를 아껴 쓰고 덧버선을 꿰매 신던 검소함. 남모르게 이어온 수많은 구호 활동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시인은 “이것은 전기가 아니라 한 편의 긴 시”라고 고백했다. 시인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여사는 박제된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한 역사가 되었다.
서거 후 반백 년이 흘렀다. 세월은 강물을 바꾸고 사람의 기억을 흐리게 하지만 여사가 남긴 것들은 오히려 오늘에 와서 더 또렷해진다. 말보다 실천, 분열보다 화합, 사익보다 절제. 요즘 세상에 더 절실한 여사의 품격.
옥천이 낳은 시인 정지용이 우리의 정서를 ‘향수’라는 시어로 길어 올렸다면 여사는 그 정서를 ‘헌신’이라는 삶으로 보여주었다. 옥천에서 여사는 이제 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닮고 싶은 사람으로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제1회 육영수 여사 정통한복모델대회’의 부제를 정하면서 향수, 옥천, 정지용, 한복, 품격, 국모… 여러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나만 고르려 했지만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무엇 하나 뺄 수가 없었다. 여사가 살아온 삶의 결을 온전히 담기 위해 결국 ‘대한민국 국모의 품격’을 중심에 두고 ‘향수, 시간을 품은 아름다움’과 ‘한복으로 잇는 품격’을 나란히 놓았다. 세 개의 부제를 한데 엮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넘치는 것이 아니라 여사가 우리에게 남긴 자리가 그만큼 넓고 깊기 때문이리라.
이번 모델대회는 고운 옷을 뽐내는 무대가 아니다. 반세기 동안 옥천에 머물러 있던 여사의 헌신을 되살리고 옥천 밖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여사의 삶과 정신을 알리기 위한 자리다. 나는 이 무대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2회, 3회로 계속 이어지며 지난 3월 옥천의 찬 이슬을 맞으며 시작된 ‘영수 아가씨’의 칼럼처럼 다음 세대에게도 닿기를 바란다.
이 칼럼들에 담아온 여사의 자취를 이제 걸음으로 옮길 차례다. 일흔이 넘은 내 걸음이 여사의 삶에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기를. 생가 마당 담장 아래, 목련 가지가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조용히 이곳 육영수여사생가를 찾아 한참을 머물다 간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육영수 여사의 삶이 잠깐이라도 사람들 곁에 머물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