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수(49)-청산현감 이윤신(李潤身)
조정 중하위직 두루 거친 실력파, 승진 과거시험 중시 장원 1728년 청산현감 때, 월경지 주성면에 청덕선정비 세워줘
청산현감 이윤신(李潤身)은 1689년(숙종 15년)에 태어난 조선 후기 조정의 중하위직을 두루 거친 실력파 문신이다. 본관은 함평 이씨(咸平李氏)이고 자는 덕중(德仲)이며 호는 지포(芝浦)이다. 증조부는 이초기, 할아버지는 이지성, 아버지는 이인상(李寅相), 어머니는 최후식의 딸이다.
보은군 내북면 동산리에는 조선 영조 때 청산현감을 지낸 이윤신의 청덕선정비가 있다. 선정비 전면에는 현감이후윤신청덕선정비(縣監李侯潤身淸德善政碑)라고 음각되어 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이윤신은 1728년(영조 4년)에 청산현감(靑山縣監)으로 제수되었다. 이곳 보은군 내북면의 이윤신 현감 청덕선정비는 그 후인 1730년 전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성면(내북면 옛 이름)은 본래 청산에서 북쪽으로 보은현을 거쳐 보은 북부에 위치한 청산현 월경지이다. 청산현의 주성부곡이 위치해서 청산현감이 한양에서 청산현으로 부임할 때 이곳에서 하룻밤 유숙하고 80리 떨어진 청산 관아에 부임했다고 한다. 이곳 주성부곡은 청산현(靑山懸) 관할 주성면(酒城面)이었으나 1906년 보은군 주성면으로 행정 관할이 바뀌었다. 그 후 조선 총독부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창상리(倉上里)와 신기리(新基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리(東山里)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시켰다.
윤증 관작추탈, 반대상소 올려
이윤신 청산현감은 숙종 37년(1711년) 식년시 진사 3등 12위로 합격했다. 1717년(숙종 43년)에 진사(進士)의 신분으로 숙종이 윤선거(尹宣擧)와 그의 아들 윤증(尹拯)의 관작을 추탈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에 대해『숙종실록 59권』1717년(숙종 43년) 4월 11일 기사에 따르면 ~<중략>~
사신(史臣)은 말한다. “이윤신의 (상)소가 어진이를 위하여 무함을 변명하는 것이라고 명분을 삼았으나 일편(一篇)의 정신은 오로지 뜻을 기울인 것이 있다. 은연중에 성상이 윤가(尹家) 부자를 처분한 바를 사문이 크게 재앙을 만난 것으로 돌려 장차 시비를 어지럽히고 천청(天聽)을 어지럽히려 한 것이니 그 계책이 또한 교묘하였다. 성명(聖明: 왕)께서는 그 심술을 간파하여 엄한 말로 통렬하게 배척해야 마땅할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세자 시강원에서 관직 시작
이윤신(李潤身)은 1723년(경종 3년) 별시 문과에 병과 8위로 급제하여 1727년(영조 3년) 세자시강원 설서에 임명되어서 처음 관직에 진출했다.
1728년(영조 4년) 7월에 청산현감을 제수 받았다. 이어 1731년(영조 7년)에 왕에게 직언하는 종6품 사간원 정언, 7월에 부사과에 임명되었다.
1735년에 진위(陳慰) 겸 진향사(陳香使)의 서장관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이어 사헌부 헌납, 사간원 사간, 세자시강원 보덕을 역임하였다.
문신 중시에서 장원, 통정대부 승진
1746년(영조 22년)에 세자시강원의 종3품 보덕을 거쳐 사헌부 종3품 집의에 임명되었다. 특히 이 해 이윤신은 하급 문신들만 치르는 고급관료 선발 시험인 중시(重試)에서 장원을 차지하여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서 실력을 인정받아 이 해 윤3월에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다.
다음 해인 1747년(영조 23년) 형조참의에 올랐고 이어 영월부사에 임명되었다. 또 같은 해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