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옷깃을 세우다·7화 - 세월의 굽이를 돌아 다시 육영수생가의 마루에 서며

2026-04-23     최장규 본지 대표
육영수 여사

 

내 고향 옥천읍 교동리, 육영수 여사의 생가 앞을 지나며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되짚어본다. 지금의 나는 지역 신문의 발행인으로 또 교회의 장로로 살아가고 있지만 내 젊은 시절은 꽤나 거칠었다. 무엇이 되겠다는 뜻도 없이 이리저리 부딪히기만 하며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아깝기도 한 날들이다. 그때의 내게 담장 너머 목련은 그저 계절에 따라 피었다 지는 꽃에 불과했다.

세월이 흐르고 삶의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기고서야 여사가 남긴 자취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소외된 곳의 흙먼지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분의 삶이, 방황하던 내게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신문의 지면을 채울 때면 권력이 아닌 민초의 아픔을 먼저 살폈던 여사의 ‘야당 정신’을 되새기고 이웃을 섬길 때면 소록도 한센인들의 거친 손을 잡으셨던 그분의 진심을 가만히 떠올린다. 옥천의 아들로서 내 삶의 태도를 바로잡게 한 것은 결국 그분이 보여준 정갈하고도 단단한 삶이었다.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라 묵묵히 살아낸 삶 자체가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여사의 자취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을 통해 인재 육성의 기틀을 놓으셨던 일, 소록도와 양지회를 통해 사회를 보듬었던 일들은 지금 이 사회를 받치는 뿌리의 일부가 되어 있다. 미력하나마 그 뜻을 잇기 위해 이제 작은 걸음을 떼려 한다. 

오는 5월 16일 초여름의 기운이 감도는 옥천 교동리 생가 마당에서 ‘제1회 육영수 여사 정통한복모델대회’를 연다. 고운 옷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다. 여사가 나고 자란 그 집 마당에서 전국에서 모인 이들이 여사의 정신을 옷선에 담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보는 시간이다. 내게 이 무대는 젊은 날의 거친 삶을 지나 이제야 여사가 걸으셨던 헌신의 길을 따라가 보겠다는 늦은 다짐이기도 하다.

행사를 준비하며 참으로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국모옥천육영수기념사업회’의 이름으로 기꺼이 후원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소중한 정성을 보태주신 분들부터 격려의 말을 건네주신 분들까지 그 뜻이 하나하나 모이지 않았다면 5월의 무대는 마련되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단순한 보탬이 아니라 우리 고향이 품고 있는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라 생각한다.

어느덧 바람결이 한결 따뜻해졌다. 1화부터 이어온 이 칼럼도 이제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다. 부족한 글은 여기서 멈추지만 5월 16일 생가 마루 위에서 펼쳐질 ‘육영수 정통 한복모델대회’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그날 나는 거울 앞에서 저고리 깃을 여민다. 대님을 동여매고 고름 매듭을 바로잡는다. 젊은 날의 방황을 잠재워준 옥천의 큰 어른께 이제야 정갈한 옷매무새로 인사를 올리며 런웨이에 서려고 한다.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과 뜻을 보태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5월 햇살 내리쬐는 그 생가 마당에서 여러분을 반갑게 뵙기를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