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붓을 모아 옥천의 한 글씨를 쓰자
극장 없는 고장이 다섯 개의 극장을 만들어 낸 것처럼
지난해 가을, 금구리 먹자골목이 잠시 극장이 되었다. 옥천전국연극제가 열린 나흘 동안 골목에는 거기극장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곳에 인형극 무대가 들어섰다. 문화예술회관은 옥천극장이, 관성회관은 관성극장이, 청소년수련관 별관은 지용극장이 되었고, 회관 앞마당에는 짜꿍극장이 생겨났다. 정지용 시인과 정순철 선생의 이름과 동요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새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공간에 이름을 붙이고 사람을 불러 모았을 뿐이다. 그런데 없던 극장이 생겨났다. 문화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서로 이어 주는 일이라고.
붓글씨를 처음 배울 때 나는 永(영) 한 글자를 수없이 썼다. 한 글자 안에 붓을 움직이는 여러 운필법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점 하나도 방향과 힘이 다르고, 삐침과 갈고리 또한 서로 다른 표정을 가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다른 획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 비로소 하나의 글자가 된다. 한 지역의 문화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글에서 나는 예술가가 제 고장의 이야기 곁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머무름들이 서로 만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많은 이야기와 사람들을 누가, 어떻게 이어 갈 것인가.
생각해 보면 작은 만남들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이번 여름 포도복숭아축제는 옥천예술제와 나란히 열려, 농산물을 사러 온 사람들이 예술가들의 장터를 둘러보고 인형극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지역의 극단들은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흥남부두에서 피란을 와 옥천에 빵집을 열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연극이 되고,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별주부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참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조금 아쉽다.
다만 획은 저마다 아름답게 그어지고 있지만, 아직 한 글자로 모이지 못한 느낌이다. 미술은 미술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문학은 문학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술은 혼자 완성되는 것 같지만, 한 지역의 문화는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모일 자리도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가양복합문화센터에는 예술인들이 활동할 공간이, 지용문학공원 곁 마이스센터에는 전시 공간이 갖춰지고 있다. 옥천군이 지역 예술인 등록 아카이브를 추진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름을 모으는 것과 사람을 모으는 것은 다른 일이다. 명단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름들이 서로의 작업을 발견하고 함께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옥천에도 예술과 예술을, 현장과 행정을 잇는 하나의 그릇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작은 목소리를 정책으로 건네고, 행정의 자원과 예술가의 상상력을 이어, 함께 기획하고 책임질 수 있는 협의의 자리다.
지금 옥천의 살림이 넉넉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안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행 등으로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문화 분야도 그 영향을 피해 가기 어렵고, 문화진흥기금이 있다지만 한 팀이 받는 지원금만으로 작품 하나를 키워내기는 쉽지 않다. 그럴수록 나는 오히려 함께라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혼자 받으면 작은 지원금이지만, 여러 예술가가 마음과 재능을 모으면 하나의 전시가 되고 공연이 되고 지역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다만 오래 붓을 잡아온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말하고 싶다. 옥천의 예술이 각자의 붓끝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예에서 획과 획 사이의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 여백이 있어야 획이 살아나고 글자가 숨을 쉰다. 예술가와 예술가 사이에도 그런 여백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 몫의 붓을 올려놓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나는 옥천도 그렇게 쓰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극장 없는 고장이 다섯 개의 극장을 만들어 낸 것처럼, 옥천에도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문화의 공간은 많다.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 공간에 사람을 불러 모으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흩어진 붓을 모으고 각자의 붓을 더 힘껏 들되, 서로 다른 획이 만날 수 있는 한 폭의 화폭을 함께 펼쳐보자는 뜻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 이것이 우리가 함께 쓴 옥천의 한 글자였구나.
그렇다면 나는 왜 이토록 붓끝으로 옥천을 말하려 하는가. 그 이야기는 마지막 글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