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보다 빈꿈이 더 많아지면 지역은 사라진다

2026-08-19     우지후 숲속작은목공방 가비뉴 대표
숲속 나무 스피커


목수는 나무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나이테를 본다.
곧게 자란 나무보다 비바람을 견딘 흔적이 있는 나무가 더 단단한 경우가 많다. 사람도, 지역도 어쩌면 그와 닮았다. 순탄함보다 버텨온 시간이 그 가치를 만든다.
옥천에 내려와 목공방을 시작하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무렵,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 혼자 잘된다고 이 지역이 달라질까?’
공방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기뻤지만, 문득 주변을 돌아보면 함께 꿈꾸는 청년이 많지 않았다. 혼자 오래 달리는 것보다 함께 걸어갈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지역은 한 사람의 성공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도전이 모여 만들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연이 이어졌다.
라탄공방 온봄달열하루의 임채원 대표, 도자기공방 수연세라믹의 송은선 대표, 뜨개공방의 최진아 대표.
우리는 각자 만드는 것은 달랐지만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국토의 중심, 옥천에서 우리의 꿈을 한번 펼쳐보자.’
그 마음을 담아 청년단체 가온비를 만들었다.

처음의 우리는 참 뜨거웠다.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직접 플리마켓을 기획했고, 옥천에서 열린 크고 작은 행사라면 빠짐없이 참여했다. 지원이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았다. 우리를 알리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목수인 나는 행사에 사용할 나무 부스를 직접 만들었다. 무겁고, 설치도 쉽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 ‘이번에는 누군가 우리를 알아봐 줄까’ 하는 기대가 더 컸다.

그때의 우리는 돈보다 가능성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길고 험했다.
지역에서 무언가를 꾸준히 이어간다는 것은 열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생업도 지켜야 했고, 행사도 준비해야 했고, 각자의 삶도 버텨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 조금씩 지쳐갔다.

사실 요즘은 나 역시 예전처럼 자신 있게 “무조건 해봅시다.”라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보다 더 크게 남아 있는 질문이 있다.
‘우리까지 멈추면, 다음 사람은 어디에서 용기를 얻을까.’

사람들은 빈집이 늘어난다고 지역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살아보니 정말 두려운 것은 빈집보다 빈꿈이었다.
새로운 가게를 열겠다는 사람이 줄어들고,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사람이 줄어들고, 함께 축제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사라질 때 지역은 소리 없이 늙어간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건물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꿈을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창한 꿈이 아니어도 괜찮다.
작은 공방 하나.
작은 카페 하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 하나.
청년 몇 명이 모여 여는 작은 플리마켓 하나.
그 작은 시작들이 모여 결국 한 지역의 문화를 만들고, 누군가에게는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용기가 된다.

숲은 큰 나무 몇 그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름 없는 작은 나무들이 서로의 곁을 지키며 자라날 때 비로소 숲은 울창해진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혼자서는 오래 버티기 어렵지만, 함께라면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가끔은 지치고, 가끔은 멈춰 서기도 하겠지만, 누군가는 또 새로운 꿈을 품고 이 숲으로 걸어올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어본다.
언젠가 이 숲이 더 건강하게 자라, 누군가에게는 떠나야 하는 곳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