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그냥 탑이라고 했어”...사라지는 마을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다

[ 충청북도 무형유산 지정예고 특집 ] 옥천 마을 탑제 ②

2026-08-19     이성열 기자

 


“여기서는 옛날부터 그냥 탑이라고 했어”

2022년 안남면 청정리에서 만난 신윤학 옹의 말이다. 학술적으로는 마을 탑의 기능을 수살·비보 등 여러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정작 그곳에서 평생 살아온 주민들이 사용한 말은 달랐다. 신 옹은 탑을 두고 “수살이라고는 안 했다”며 “탑에는 원래 동네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기억했다. 주민 여러 명이 한마음으로 돌을 쌓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기록 증언 당사자인 신윤학 옹(축관 담당/안남면 청정리)


‘충북 옥천의 마을 탑 신앙 연구’가 기록하려 했던 것은 이런 ‘주민의 말’이었다. 어디에 몇 기의 탑이 있는지만 확인하는 조사가 아니라 주민들이 탑을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누구에게 배워 제사를 지냈는지 어떤 제물을 마련했고 무엇을 금기로 여겼는지까지 주민의 기억을 따라가는 조사였다.

연구서는 아예 첫머리에서 “마을에서는 돌탑이 아니라 그냥 탑이라 불렀다”고 명시했다. 연구자가 붙인 이름보다 주민들이 실제 사용하는 말을 우선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탑’으로 명칭을 통일했지만 구술채록 부분에서는 주민의 입말을 살리기 위해 ‘돌탑’과 ‘탑’을 그대로 혼용했다.

연구서의 구성에서도 구술 기록의 비중은 컸다. 전체를 총론과 마을별 탑제 조사, 구술채록담으로 나눠 연구진의 분석과 주민들의 말을 별도로 담았다. 특히 구술채록에는 제사의 절차뿐 아니라 탑이 옮겨진 이유, 사라진 제당과 나무, 예전 마을의 모습처럼 문헌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까지 포함됐다. 주민 한 사람의 기억이 곧 마을의 변화사를 복원하는 자료가 된 셈이다.


정월 제사 현장에서 시작된 조사

조사는 마을 제사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시작됐다.
연구진은 2022년 2월, 음력 정월 동제 시기에 첫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탑제나 산제는 1년에 한 번 특정 날짜에 열리는 경우가 많아 실제 제의 모습을 기록하려면 그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이어 3월부터 7월까지는 마을 단위 심화조사를 진행했다. 한 차례 방문으로 끝내지 않고 마을마다 2~3차례씩 다시 찾아 주민들을 만났다. 8월부터 12월까지는 현장에서 모은 자료와 기존 문헌을 비교·분석해 보고서를 집필했다. 조사와 정리, 분석에 한 해를 쓴 셈이다.

방법도 구술에만 머물지 않았다. 현재 탑제를 지내는 마을을 우선 조사하되 이미 제사가 중단된 마을 가운데 과거 전승이 확인되는 곳까지 찾아갔다. 현장에서는 주민 개인이 가지고 있던 일기와 문서, 옛 사진을 비롯한 기록물도 수집했다. 일부 마을은 2022년 제의 사진을 확보하지 못해 2011년 ‘옥천의 민간신앙’ 조사 당시 사진까지 다시 활용했다.

현장의 말은 녹음으로 남겼다. 연구서에는 조사 과정에서 만들어진 많은 녹음파일을 별도로 풀어 글로 옮겼고 마을별 드론 촬영과 사진 정리, 영상 기록화도 함께 진행했다는 설명이 남아 있다. 연구진은 이 작업을 두고 어르신들의 삶과 의미를 ‘탑제’라는 연구 과제를 통해 현재와 미래에 연결하는 가교 역할이라고 적었다.

이처럼 조사 대상은 눈앞에 남아 있는 탑만이 아니었다. 이미 없어진 탑이나 제당의 위치도 주민의 증언을 따라 확인했고 도로 개설이나 경지정리·수해 등으로 탑이 옮겨지거나 사라진 과정도 기록했다. 현재 모습만 사진으로 남겼다면 알 수 없었을 변화까지 주민의 기억과 과거 사진을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록하려 한 것이다.


한 사람의 기억을 다른 주민에게 다시 물었다

구술조사의 어려움은 ‘기억’ 자체에 있었다. 수십 년 전 제사의 날짜와 절차, 탑이 옮겨진 시점 등을 한 사람의 기억만으로 확정하기 어려웠다.

군북면 자모리 조사 과정이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윗자모실에서 송재정·김주겸 옹과 김영우 이장을 만났다. 고령인 송 옹의 기억에서 일부 시점이 뒤섞인 부분이 나타나자 연구진은 같은 내용을 김주겸 옹과 김영우 이장에게 다시 물어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1970년대 도로를 정비하며 탑을 지금의 자리로 옮긴 사실, 산제와 탑제의 절차 등이 여러 사람의 기억을 통해 보완됐다. 아랫자모실에서는 과거 제관을 맡았던 주민의 증언을 듣고 개인 사진첩에 남아 있던 옛 마을 사진도 제공받았다.

구술자료는 그래서 단순한 ‘옛날 이야기’와 다르다. 한 주민의 기억을 듣고 다른 주민에게 다시 묻고 현장에 남은 탑과 길·나무의 위치를 확인하고 옛 사진이나 문헌과 맞춰보는 과정이 함께 이뤄졌다.


“탑을 위하던 남자들이 다 죽었어”

안내면 답양리에서는 기록을 남기는 일이 왜 시급했는지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조사 당시 답양리의 화골·논골·양지골은 각각 10가구 안팎에 불과했고 대부분 고령 주민이었다. 연구진은 ‘동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줄 만한 원주민도 찾기 힘든 형편’이라고 기록했다.

논골에서는 이남규 옹과 90세가 넘은 염금자 할머니를 만났다. 염 할머니는 스무 살에 논골로 시집와 70년을 살아오며 본 탑제와 마을 생활을 들려줬다. 화골에서는 직접 탑제를 이어가던 송용성 씨와 이종순 할머니, 양지골에서는 차팔성 옹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양지골에서 탑제의 유래를 자세히 기억하는 주민은 차 옹 한 사람뿐이었다.

 

기록 증언 당사자인 논골 염금자 할머니(안남면 답양리)
안남면 답양리 논골 어귀의 탑


염금자 할머니의 구술에는 마을이 사라지는 과정까지 그대로 담겼다.
과거 논골을 비롯한 답양리에는 사람이 많았고 정월이면 주민들이 함께 탑에 정성을 들였다. 하지만 사람이 줄면서 여러 탑을 각각 관리하기 어렵게 됐고 탑을 합쳐 다시 쌓기도 했다. 염 할머니는 조사 당시 상황을 “지금은 사람이 없어”라고 설명하면서 코로나19와 주민 사망이 겹쳐 “제물을 준비할 사람이 없어 이제는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말했다.

전승이 끊어진 이유가 주민들이 갑자기 탑 신앙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제를 지낼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탑은 남았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한 명

청성면 장연리에서는 상황이 더 절박했다.
장연과 귀재마을에는 탑이 남아 있었지만 산제와 탑제는 이미 오래전에 중단된 상태였다. 연구진은 “이를 아는 주민도 거의 없다”고 기록했다.

장연에서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를 찾아갔다. 동제에 대해 기억하는 주민이 사실상 그 한 명뿐이었지만 들을 수 있는 내용은 새댁 시절 산제와 탑에 정성을 들였다는 단편적인 기억 정도였다.

귀재에서는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에게 탑의 위치를 물었다. 그 주민은 자신보다 아버지가 더 잘 안다며 유복종 옹을 소개했다. 다시 유 옹을 찾아가자 마을 지명부터 탑제와 기우제까지 기억이 이어졌다. 연구진은 설명만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유 옹과 함께 마을 뒤편으로 올라가 무너져가는 탑의 위치까지 확인했다.

마을에 탑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였다. 누군가 그곳을 ‘탑’이라고 알려주고 언제 제를 지냈는지 설명하고 어느 길로 제관이 올라갔는지 기억해야 비로소 탑을 둘러싼 문화가 복원될 수 있었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함께 사라졌을 이야기

2022년 조사 당시에도 전승의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군북면 자모리에서는 대부분의 원주민이 80대 이상이었고 주민들은 고령화로 제물을 마련하기 어려워지면서 탑제를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군서면 금산리 금천에서는 10여 년 전만 해도 탑제에 20명가량이 모였지만 2022년 조사 때는 3~4명이 참여하는 데 그쳤다.

돌로 쌓은 탑은 사람이 떠난 뒤에도 상당 기간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제사 날짜를 정하는 법, 금줄을 꼬는 방식, 제관이 지켜야 했던 금기, 탑을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같은 기억은 사람과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2022년 연구의 중요한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구술채록담’이다. 현재 탑제를 지내는 마을뿐 아니라 이미 제사가 중단된 곳까지 조사해 옥천지역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말을 기록했다. 연구진은 학술적으로 정리한 글과 별도로 주민들의 ‘입말’을 남겼다.

보고서 서문에는 이 조사를 시작한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문장이 있다. 가까이에 있어 당연하게 여기던 문화가 세월이 흐르며 사라지고 있으며 기억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으면 함께 없어질 이야기들이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몰라도 어른들이 하시던 대로 했다”는 주민들의 말도 이제는 하나의 기록이 됐다. 탑 자체를 남기는 일 못지않게 그 탑을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을 남겨야 하는 이유다. 2022년의 현장조사는 사라져가는 마을신앙을 조사한 작업인 동시에 고령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옥천 농촌공동체의 삶을 기록으로 붙잡아 둔 작업이었다.


 / 사진 출처 : 충북 옥천의 마을 탑 신앙 연구(2022) /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