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탑보다 오래 남아야 할 이야기
옥천의 한 마을 주민이 돌탑을 두고 했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우리는 옛날부터 그냥 탑이라고 했지.”
연구자들은 돌탑의 형태를 분류하고 제의의 성격과 의미를 설명하지만 정작 그 탑과 함께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거창한 이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 늘 있었고 때가 되면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었던 곳. 그것이 그들에게는 ‘탑’이었다.
본지는 지금까지 옥천의 마을 돌탑과 탑제를 연재했다. 이는 2022년 진행된 학술연구와 2023년 학술대회 등 그동안 축적된 연구와 기록을 토대로 옥천의 탑 문화를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이었다.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눈에 들어온 것은 돌보다 사람이었다.
돌탑은 수십 년, 어쩌면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 앞에서 제를 지내던 사람은 늙고 마을을 떠나고 세상을 떠난다. 언제 제사를 지냈는지 누가 준비했는지 집집마다 무엇을 보탰는지 어떤 마음으로 탑 앞에 섰는지를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탑이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문화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돌만 남고 그 돌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설명할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그저 돌무더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돌탑을 지키는 일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돌탑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을 지키는 일이다.
2022년 학술연구와 이후 이어진 기록 작업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탑의 위치와 형태만 조사한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제의를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어떤 공동체의 기억을 만들어왔는지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록했다고 전승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연구보고서가 서가에 꽂혀 있고 학술대회 자료집이 보관돼 있는 것만으로 문화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모은 기록을 다시 주민에게 돌려주고 아이들이 읽게 하고 사람들이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전승의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과거의 제의를 모든 마을에서 그대로 복원하는 것만을 전승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직 탑제를 지내는 마을은 주민들이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제의가 중단된 마을은 사진과 영상, 구술을 통해 기억을 남길 수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이 사는 마을의 탑을 찾아보고 그 이야기를 배우게 할 수 있다.
옥천의 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을탑 이야기 지도’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단순히 위치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마다 다른 탑의 모습과 제의, 주민의 기억을 함께 담는 것이다. 몇 개 마을을 연결한 탐방길을 만들고 주민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이런 기록은 옥천만의 문화 브랜드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역의 브랜드라고 하면 흔히 새로운 시설을 짓거나 눈에 띄는 조형물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시설이 아니라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옥천 곳곳에 남아 있는 돌탑과 탑제에는 마을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다.
탑을 쌓은 이유도 제를 지내는 방식도 주민들이 기억하는 이름도 조금씩 다르다. 이 차이를 억지로 하나로 만들기보다 그대로 살리는 것이 오히려 옥천다운 문화가 될 수 있다.
탑을 닮은 기념품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옥천의 돌탑을 보고 “왜 이곳 사람들은 돌을 쌓았을까”라는 질문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주민의 목소리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유산의 가장 좋은 보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이야기되는 것이다.
이번 본지의 연재도 하나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기록이 마지막이어서는 안 된다. 이미 축적된 학술자료를 지역사회가 다시 읽고, 마을 주민들의 기억을 더 모으고, 그것을 다음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 돌탑도 언젠가는 허물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탑을 둘러싼 이야기를 제대로 기록하고 전한다면 탑이 있던 자리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돌탑은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왔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돌탑보다 오래 남을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