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마을 탑에서 몽골 오보까지…지역 신앙을 문화유산으로
[ 충청북도 무형유산 지정예고 특집 ] 옥천 마을 탑제 연구 다시 읽기 ④
2022년 옥천 곳곳의 마을 탑을 찾아 주민들의 기억과 탑제를 기록한 연구는 이듬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다. 연구의 질문이 ‘옥천에는 어떤 마을 탑과 탑제가 남아 있는가’에서 ‘옥천의 마을 탑은 한국과 세계의 다양한 탑 문화 속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로 확장된 것이다.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은 2023년 6월 22일 옥천 관성회관에서 ‘옥천 마을탑의 종교문화사 이해’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이필영 한남대학교 명예교수의 ‘옥천 지역 마을 탑 신앙의 성격과 의의’를 시작으로 오선영 한남대학교 강사의 ‘굿당과 기도처의 탑’, 이평래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의 ‘몽골의 오보와 오보 신앙’,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의 ‘불교 사찰의 탑’ 등 4개 주제가 발표됐다. 옥천의 마을 탑을 출발점으로 한국 민간신앙과 무속, 몽골의 적석 신앙, 불교의 탑 문화까지 시야를 넓힌 것이다.
첫 발표는 2022년 현장조사 성과를 학술적으로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이필영 교수는 옥천 마을 어귀에서 볼 수 있는 탑을 산신과 함께 마을의 안녕을 지키는 신앙대상으로 설명했다. 마을에 따라 탑과 장승·짐대·수구맥이 등이 함께 놓이고, 이들은 산신을 모시는 상당과 짝을 이루는 하당신으로 기능한다. 마을을 평안하게 한다는 기본 기능에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는 ‘수살’과 풍수상 허한 곳을 보완하는 ‘비보’ 기능이 마을별로 다르게 결합돼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다른 신앙문화와의 비교였다. 연구는 옥천의 탑을 고립된 지역 풍습으로만 보지 않았다. 흙이나 돌을 쌓아 신성한 공간과 경계를 만들고 기원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가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필영 교수는 시베리아·몽골의 돌무더기 신앙, 이누이트의 이눅스크, 불교 이전의 탑 전통 등을 비교 연구 대상으로 제시하며 한국의 탑 신앙이 세계의 보편문화와 기층문화를 살피는 하나의 창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두 번째 발표인 ‘굿당과 기도처의 탑’은 공동체 신앙에서 개인과 무속인의 기도 공간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당과 법사·보살이 산과 물, 바위 등 자연공간을 찾아 기도하고 그곳에 돌을 쌓거나 신성한 공간을 만드는 사례를 통해 탑이라는 형태가 마을공동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한 사례에서는 굿당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땅속 자연석을 드러내 신명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암반 위에 쌓아 기도처를 만들었다. 가운데에는 천존, 좌우에는 장군당과 칠성당을 두었고 장군당 앞에는 별도의 돌탑을 쌓았다. 돌 자체에 신성이 있다고 인식하고 정성을 들이는 행위가 무속의 기도문화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이런 굿당의 탑과 옥천 마을 탑을 동일한 신앙으로 볼 수는 없다. 옥천의 탑제가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한 해의 안녕을 비는 공동체 신앙이라면 굿당과 기도처의 탑은 무속인이나 개인의 기도와 신앙활동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럼에도 ‘돌을 쌓고 그 공간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행위가 서로 다른 신앙 영역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범위를 넓혔다.
가장 먼 곳까지 시선을 확대한 연구는 몽골의 ‘오보’였다. 몽골 초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오보는 돌더미 위에 나뭇가지나 버드나무를 세우고 푸른 천이나 불교 경문 등을 걸어 놓은 신앙대상물이다. 산 정상이나 고개, 교차로, 강과 호숫가, 사원 주변 등에 세워졌으며 몽골인들은 길을 가다 오보를 만나면 차나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하거나 돌을 더하고 오보 주위를 도는 풍습을 이어왔다.
오보 연구가 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오래된 돌무더기 신앙’이라는 단순한 설명을 넘어 그 형성과 변화의 역사를 추적했다는 데 있다. 발표 자료는 초기 오보가 경계와 이정표 기능을 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후 티베트불교와 산천숭배·수목숭배·조상숭배·샤머니즘 등이 결합하면서 복합적인 신앙대상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청대에는 행정구역의 경계표 역할을 하면서 지역 주민의 결속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대상으로까지 확대됐다.
특히 오보가 돌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나무와 천, 각종 상징물을 함께 갖추고 있고 일부에는 새를 올린 목제 조형물까지 나타난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연구에서는 이러한 요소 가운데 일부가 북아시아의 수목숭배와 솟대 신앙 등이 오보 신앙 속에 흡수된 결과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몽골의 오보와 옥천의 마을 탑이 같은 기원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번 비교 연구의 의미는 돌을 쌓는다는 비슷한 외형만 보고 하나의 뿌리를 단정하지 않고, 각각의 역사와 주민들의 신앙 행위, 사회적 기능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따로 살펴야 한다는 데 있다. 2022년 청마리 연구가 근거 없이 탑의 역사를 마한시대까지 끌어올리는 해석을 경계했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몽골의 사례는 살아 있는 무형유산의 전승이라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오보 신앙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한동안 제의가 중단됐다가 몽골에서는 1990년대 이후 다시 살아났고 국가 단위 산신제와 오보제도 1995년부터 공식 재개됐다. 오늘날에도 주민들이 오보 주위를 돌고 공물을 바치며 한 해의 복과 가축의 번성, 질병의 퇴치와 적절한 비를 기원한다. 오보제는 2017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고 학술대회 자료는 소개했다.
네 번째 발표는 ‘탑’이라는 말의 또 다른 뿌리인 불교로 향했다. 불교의 탑은 고대 인도의 스투파에서 출발했다. 본래 ‘쌓아 올린다’는 뜻을 지닌 말이었지만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고 흙이나 벽돌을 쌓은 무덤을 가리키게 됐고 불교에서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고 부처를 상징하는 신앙조형물로 발전했다. 중국을 거치면서 ‘탑’이라는 이름이 정착했다.
불교 탑에서도 ‘돌기’라는 행위가 중요한 의례로 나타난다. 불탑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돌며 경배하는 탑돌이는 인도의 스투파 예배에서 비롯됐다. 옥천 마을 탑과 불교 탑은 만들어진 배경과 신앙대상이 다르지만, 탑을 신성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주변에서 기원과 제의를 행한다는 점을 비교하면서 ‘탑’이라는 조형물이 서로 다른 종교문화에서 어떤 의미를 얻어왔는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2023년 연구는 학술대회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해 3월부터 9월까지 ‘옥천 돌탑과 문화유산’을 주제로 사진공모전을 열어 수상작을 달력과 엽서로 제작했고, 9월에는 경주 세계국가유산산업전에 참여해 옥천의 돌탑과 마을신앙을 알렸다. 11월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옥천 민속문화 전승학교’를 운영했다. 연구실과 학술대회 안에 있던 연구 결과를 사진과 홍보, 주민 교육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간된 ‘옥천 민속문화의 이해’는 전승학교 교재로 제작됐다. 내용도 마을 탑에 머물지 않았다. 청마리 산제와 수살맥이 같은 마을신앙에서 가정신앙, 출산·혼례·상장례, 구비문학, 세시풍속, 금강 수계의 식생활, 누에치기 등 옥천 주민들의 삶 전반으로 영역을 넓혔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네 편의 논고도 요약·정리해 부록에 수록했다.
2022년 사업이 마을을 직접 찾아 탑의 위치와 제의, 주민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단계였다면 2023년은 그 자료의 의미를 다른 지역과 종교문화 속에서 비교하고 주민에게 다시 돌려주는 단계였다. 현장조사에서 기록화로, 기록에서 학술적 가치 규명으로, 다시 사진·교육·홍보를 통한 전승으로 연구의 영역이 넓어진 셈이다.
그리고 이 축적된 연구는 2026년 다시 ‘무형유산 지정’이라는 단계와 만나고 있다. 옥천의 마을 탑제가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오래된 돌탑 몇 기가 남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탑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함께 제물을 마련하고 마을의 평안을 빌어온 기억, 마을마다 다른 방식으로 제사를 이어온 전승, 그리고 이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려는 과정까지 함께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시작된 ‘발굴’이 기록과 연구를 거쳐 전승으로 이어졌고, 이제 그 성과가 충북도 무형유산 지정 여부를 판단받는 단계에 이르렀다. 옥천의 마을 탑 연구가 4년에 걸쳐 보여준 변화는 지역의 작은 민속이 어떻게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다시 발견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사진 출처 : 옥천 마을탑의 종교문화사 이해 학술대회 자료집(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