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줄면 밥상이 먼저 줄어듭니다

잘 씹는 힘은 영양과 기억, 일상의 즐거움과 이어져 있습니다

2026-09-10     김헌식 이원사랑치과 대표원장

 


“원장님, 나이 들면 이가 빠지는 게 당연하지요. 한두 개 없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이원에서 진료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입니다. 이가 불편해도 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되고, 질긴 것만 피하면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심정을 왜 모르겠습니까. 아프지도 않은데 빠진 이 하나 때문에 치과를 다니자니 번거롭고, 비용 걱정이 앞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과 잘 씹어 먹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이가 불편해지면 가장 먼저 밥상이 바뀝니다. 고기, 생채소, 깍두기처럼 씹는 힘이 드는 반찬부터 하나둘 밀어냅니다. 싫어서가 아니라 씹기 힘들어서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먹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고, 밥상의 즐거움도 함께 줄어듭니다.

치아는 음식을 잘게 부수는 첫 번째 소화기관입니다. 앞니로 자르고 어금니로 충분히 갈아야 삼키기도 편합니다. 씹는 힘이 약해지면 대충 삼키거나 물에 말아 넘기게 되고, 그만큼 단백질과 식이섬유 같은 영양을 골고루 챙기기 어려워집니다. 이가 줄면 밥상부터 좁아진다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일본에는 ‘8020 운동’이 있습니다. 여든 살까지 자기 치아 스무 개를 지키자는 운동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제 이로 씹고 식사의 즐거움을 누리자는 뜻이지요. 다만 스무 개라는 숫자가 전부는 아닙니다. 이가 많이 남아도 아프고 흔들리면 씹기 어렵고, 그보다 적어도 치료와 틀니로 씹는 기능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수보다, 지금 얼마나 편안하게 씹을 수 있느냐입니다.

씹는 힘은 기억력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치아를 많이 잃었거나 잘 씹지 못하는 어르신에게 인지기능 저하가 더 자주 나타났다는 연구 보고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가 빠지면 곧 치매가 온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이와 영양, 지병, 생활습관이 함께 작용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를 지키면 치매를 막는다”고 단정해 말씀드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잘 씹을 수 있는 입을 지키는 일이 노년의 영양과 몸과 마음의 건강을 받쳐 주는 중요한 생활 습관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진료실에는 한쪽 어금니가 불편해 오랫동안 반대쪽으로만 씹어 온 분, 틀니가 헐겁고 잇몸이 아픈데도 부드러운 것만 골라 드신 분들이 오십니다. 대부분 “나이가 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고 씹는 불편까지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전에는 잘 먹던 음식을 자꾸 피하게 된다면, 한쪽으로만 씹거나 음식을 물과 함께 넘기는 일이 잦아졌다면, 입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충치 때문인지, 잇몸이 약해진 것인지, 빠진 이 때문인지, 틀니가 안 맞는 것인지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원인만 찾으면 남은 치아를 지키면서 불편을 줄일 길도 보입니다. 이미 이를 잃었다고 늦은 것도 아닙니다. 남은 치아와 잇몸을 관리하고 제게 맞는 방법으로 보완하면, 좁아졌던 밥상은 다시 넓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밥상에서 나도 모르게 밀어낸 반찬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그 이유가 치아나 잇몸, 틀니의 불편 때문이라면 나이 탓으로만 넘기지 마십시오. 여든의 어느 날에도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 것, 가족과 한 밥상에 앉아 천천히 맛을 나누는 것. 잘 씹는 힘을 지킨다는 것은 그렇게 삶의 맛을 오래 지키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