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조헌’을 읽다…일기와 시에 담긴 중봉의 내면
51회 중봉충렬제 기념 학술세미나, 선비 조헌의 정신세계 살펴
임금의 잘못을 거침없이 상소하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순절한 강직한 선비. 그동안 널리 알려진 중봉 조헌 선생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일기와 시에는 타인의 고통을 안타까워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선현을 존숭하고 벗과의 신의를 중시했던 한 인간의 내면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제51회 중봉충렬제를 기념해 지난 16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 문화교육실에서 열린 ‘중봉 조헌 학술세미나’는 이처럼 충절과 절개, 기개의 상징으로 기억돼 온 조헌을 그의 일기와 문학을 통해 보다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자리였다.
이날 세미나는 김문준 (사)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황다경 성균관대학교 박사와 김기 한국고전번역교육원 교수가 각각 발표자로 나섰다. 첫 발표는 ‘같은 무리(同類)의 발견-《조천일기(朝天日記)》에 나타난 조헌의 생명 사상과 공존의 질서’, 두 번째는 ‘영남기행시(嶺南紀行詩)에서 본 중봉 조헌의 의식체계’를 주제로 진행됐다.
황다경 박사는 조헌이 명나라 사행길에 남긴 《조천일기》 가운데 공식적인 외교활동보다 그날그날 만난 사람과 사건, 그리고 이를 대하는 조헌의 판단에 주목했다.
발표에서는 조헌의 생명에 대한 인식을 크게 세 방향에서 살폈다. 자신의 몸을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것으로 생각한 점, 이러한 인식이 다른 사람의 몸과 고통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진 점, 나아가 부모를 봉양하고 자녀를 가르치며 백성의 삶을 돌보는 실천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같은 무리’, 즉 ‘동류(同類)’를 제시했다.
《조천일기》에는 굶주린 사람과 매를 맞는 사람, 과도한 세금과 부역에 시달리는 백성의 모습뿐 아니라 그들을 제대로 돕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까지 기록돼 있다. 특히 자신이 받은 음식과 대접을 당연한 몫으로 여기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형편과 함께 생각했고 아랫사람의 굶주림을 미처 살피지 못한 일까지 자신의 부족함으로 남겼다. ‘강직한 조헌’ 뒤에 가려져 있던 연민과 자기성찰의 모습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이러한 점이 강조됐다. 임준묵 한밭대 교수는 《조천일기》가 공식 사행기록과 달리 조헌이 자신이 느낀 감정과 판단, 부끄러웠던 일까지 비교적 솔직하게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 의미를 뒀다.
다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조헌만의 독자적인 ‘생명사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당시 성리학자들에게 나타나는 측은지심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동시대 인물과 비교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발표에서 김기 한국고전번역교육원 교수는 조헌이 임진왜란을 앞둔 시기 영남지역을 여행하며 남긴 91수의 기행시를 중심으로 그의 정신세계를 살폈다. 김 교수는 이 시들을 단순한 명승지 유람의 기록이 아니라 조헌이 선현과 역사, 나라와 백성, 벗을 마주하며 자신의 생각을 시로 풀어낸 기록으로 해석했다.
김 교수는 영남기행시에 나타난 의식세계를 ‘계승·책무·직필·지음’이라는 네 가지 흐름으로 정리했다. 선현의 정신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계승(繼承)’, 벼슬에서 물러난 상황에서도 나라와 백성을 잊지 않는 ‘책무(責務)’, 역사와 인물의 옳고 그름을 자신의 판단으로 가르는 ‘직필(直筆)’, 도의로 맺어진 벗과의 관계를 중시한 ‘지음(知音)’이다. 이러한 정신이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조헌의 실천적 삶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시 속에는 조헌의 또 다른 인간적 면모도 나타난다. 영남을 이동하는 곳마다 선현의 자취를 찾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친구와 동료를 만나 정을 나누는 모습이 이어진다. 발표에서는 이 같은 인간관계와 신의, 포용력이 훗날 많은 제자와 주변 인물들이 조헌을 따르게 된 배경과 연결해 살펴볼 수 있다는 해석도 제시됐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안재 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은 영남 기행이 단순한 순례를 넘어 조헌의 정치·사회적 현실인식과 어떤 관련을 갖는지 이후 의병을 일으키고 순절하기까지의 실천적 삶과 어떤 연속성이 있는지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그의 시에 나타난 역사평가와 현실비판이 강직한 선비정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논의됐다.
김대훈 옥천문화원장은 “중봉 조헌 선생에 대한 연구 성과가 학자들만의 자료로 머물지 않고 학생과 젊은 세대에게 전달돼야 한다”며 “앞으로 세미나를 젊은 세대가 함께 토론하고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넓혀 중봉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기존 연구자료를 일반 국민과 젊은 세대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는 기존의 ‘충절의 상징’이라는 조헌의 인물상에 더해 이미 남아 있는 《조천일기》와 영남기행시를 다시 읽으며 그의 내면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본 자리였다.
타인의 아픔을 돌아보고 자신의 부족함까지 기록했던 인간적 면모와 선현·벗·백성을 바라보는 문학적 시선을 함께 살펴보면서 ‘충절의 상징 중봉 조헌’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사람 조헌’과 ‘문학인 조헌’을 만나는 자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