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안의 야생화-과꽃
꽃 이야기(340)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어효선 작사, 권길상 작곡 ‘과꽃’이라는 동요다. 아동기 때부터 교과서를 보고 배웠고 많이 불렀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2절)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꽃 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시집간 지 온 삼 년 소식이 없는/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이 가사는 나의 사랑은 당신의 사랑보다 믿음직하고 깊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믿음직한 사랑을 꽃말로 삼았고 과꽃이 우리에게 주는 훌륭한 메시지인 것 같다. 유럽에서는 과꽃을 동양에서 나온 우아한 꽃잎을 가진 식물이라고 했다. 처음 전파된 것은 1728년, 과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프랑스 한 신부가 꽃씨를 가지고 서양으로 건너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뒤 품종이 개량되어 널리 퍼져 오늘의 과꽃으로 유명해졌다.
독일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마가렛(Margaret)’이라는 소녀가 과꽃을 가지고 사랑 점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꽃잎을 한 장씩 떼어내면서 ‘사랑한다. 안한다’를 반복하다가 최후에 한 장이 남아 있을 때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중 어느 쪽에 해당하는가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세계 제1차대전 중 ‘과꽃 혁명’이 발발하였다.
1818년 10월 30일 헝가리 황제가 기득권 정치인 ‘허디크 야노시’를 총리로 지명했을 때였다. 기젤라 광장에 모인 군인들은 국민의회에 맹세하였고 모자에 달린 장미를 떼어내고 과꽃으로 바꾸어 달았는데 이는 곧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국민의회는 도시의 전략 거점을 장악하고 정치범을 석방했다.
다음 날 오전 3시 ‘야노시’는 황제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사임을 알렸다. 그는 헝가리 역사상 가장 짧은 17시간 동안 총리로 지냈다. 황제는 ‘카로이 미하이’를 총리로 지명했으며 국민의회 정당들과 함께 정부를 구성할 것을 요청했고 결국 헝가리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과꽃이 그 역할을 한 것이다.
또 당나라에 ‘추금’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남편을 여의고 아들과 함께 살았다. 고을 사또가 그녀의 미모에 반해 여러 번 유혹했지만 거절당했다. 화가 난 사또는 그녀의 아들을 군사로 뽑아 싸움터로 보내고 부인을 감옥에 가두었다. 며칠 후에 나타난 사또는 열쇠를 던져주며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자기를 찾아오라고 했다.
그녀는 열쇠를 밖으로 던져버리고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싸움터에서 돌아온 아들이 이 소식을 듣고 열쇠를 던졌던 곳에 가보았더니 그 자리에 과꽃이 피어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따 ‘추금화’라고 부르고 있다. 과꽃은 국화과 관속식물로 한해살이 야생초다.
줄기는 곧추서며 위쪽에서 가지가 조금 갈라지기도 하고, 키 높이가 100㎝ 정도 된다. 잎은 어긋나며 난형,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잎자루는 위로 갈수록 짧다. 꽃은 여름에 줄기와 가지 끝에서 머리모양 꽃이 1개씩 달리는데 가장자리에 혀 모양 꽃이 자주색이고 가운데 있는 관 모양 꽃은 노란색이다.
혀 모양 꽃은 암술만 있는 암꽃이다. 모인 꽃 싸개는 반구형 조각이 3줄로 붙어 아름답다. 여러 가지 원예품종이 개발되어 전 세계에 보급되어 관상용으로 심는데 꽃말은 색깔별로 다르다. 흰 꽃은 모정, 분홍색은 달콤한 꿈, 보라색은 사랑의 승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