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 보이지 않는 사냥꾼, ‘꺅도요’의 은밀한 겨울나기

2026-10-29     조승국 옥천대청호생태관광지구 자연환경해설사
꺅도요
(앞)꺅도요, (뒤)흰목물떼새
(앞)흰목물떼새, (뒤)삑삑도요


완연한 가을색으로 물든 10월의 옥천 안남천(청정리 일대). 고요한 대청호반과 연결된 이 조용한 하천 물가에 반가운 가을 나그네들이 찾아왔다. 갯벌이 없는 내륙이지만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는 안남천의 진흙탕과 자갈밭은 이동 중인 도요·물떼새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휴게소’이자 생태 거점이다.


이날 안남천에서 관찰된 새는 ‘꺅도요’(Common Snipe)와 ‘삑삑도요’, 그리고 귀한 ‘흰목물떼새’다. 이들은 한눈에 보기에는 그저 평화롭게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생존 전략으로 완벽한 ‘공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몸길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긴 부리를 가진 ‘꺅도요’다. ‘꺅도요’는 그 긴 부리를 진흙 깊숙이 찔러 넣어 눈에 보이지 않는 진흙 속 지렁이나 갑각류를 쏙쏙 뽑아 먹는다. 영어 이름 ‘스나이퍼(Sniper)’의 어원이 될 만큼 예민한 녀석이지만 안남천의 풍요로움 앞에서는 먹이 활동에 여념이 없다.

그 옆에서는 엉덩이를 위아래로 연신 까딱거리는 ‘삑삑도요’가 걸어 다닌다. 꺅도요보다는 부리가 짧은 ‘삑삑도요’는 진흙 깊은 곳 대신 얕은 물가나 진흙 표면을 뒤적이며 곤충과 소형 수생생물을 사냥한다.

자갈과 모래가 깔린 하천 둔치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흰목물떼새’가 보인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인 ‘흰목물떼새’는 하천 정비 사업으로 서식지가 사라져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어진 귀한 새다. 이 녀석들은 도요새들과 달리 부리가 아주 짧다. 대신 뛰어난 시력으로 자갈 틈이나 지표면 위를 기어 다니는 곤충을 눈으로 찾아내 콕콕 쪼아 먹는다.

이 새들이 똑같은 공간 안에서도 ‘지표면(흰목물떼새) → 얕은 진흙 표면(삑삑도요) → 깊은 진흙 속(꺅도요)’으로 먹이 영역을 철저히 나누어 쓰는 지혜 덕분에 작은 하천에서도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생태학적 모자이크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안남천은 폭우로 인한 자연재해와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지방하천 정비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치수를 위한 하천정비는 주민들의 안전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숙원 사업이다. 그러나 제방을 쌓고 호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하천을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로 획일화한다면 ‘흰목물떼새’가 둥지를 트는 자갈밭이나 ‘도요새’들이 부리를 찌르던 부드러운 진흙톱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치수를 위해 생태를 100% 희생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안남천 하천정비사업의 설계와 시공에 생태적 대책이 고려되었기를….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방재 하천이면서도 동시에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와 ‘도요새’들이 매년 안심하고 날아와 고단한 날개를 쉬어갈 수 있는 하천. 인간의 치수(治水)와 자연의 생태가 아름답게 타협점을 찾은 ‘지속 가능한 안남천’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