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안의 야생화-시계초
꽃 이야기(341)
시계초(時計草)는 16C 남아메리카에서 스페인 선교사들이 처음 발견하고 나서 이 특이한 꽃의 모양을 기독교 전파에 이용하면서 그리스도 관련 전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처형된 지 사흘이 지나고 그 자리에서 신비한 덩굴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줄기가 뻗어나가 꽃이 피었고 이 꽃은 바로 시계꽃이었으며 이를 예수의 꽃이라 부르게 되었다.
꼬여있는 덩굴손은 예수의 몸을 묶는 데 사용되었던 끈을, 다섯 장의 꽃잎과 다섯 장의 꽃받침은 베드로와 유다를 제외한 열 명 제자들을, 실 모양으로 발달한 부화 관은 예수가 썼던 가시면류관을, 5개의 수술은 예수의 다섯 군데 상처를 상징한다고 여겨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다. 하늘을 향해 위로 꽃을 피우고 꽃잎 갈래들은 수평으로 퍼져 생김새가 꼭 시계를 닮았다고 하여 시계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시계꽃은 프라하 천문시계 문양과 많이 닮아 있다고 알려진다. 이 시계는 제작자 ‘얀 하누쉬’가 눈이 멀고 시계가 멈춰버렸다고 하는데 천문시계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체코어(語)로 ‘프라시스키 오를로이(Orloj)’이다. 오를로이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천문시계 중 가장 오랜 역사 가지고 있다.
천문시계 탄생 비화에는 1410년 프라하 시청사의 요청으로 시계공 미쿨라스(Mikulas)와 하누쉬(Hanus) 그리고 수학자 얀 신델(Jan Sindel)이 합작해 만들었다. 완성된 시계가 너무 아름다워 당시 동유럽으로 관람을 온 귀족들이 ‘하누쉬’에게 자신들의 나라에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자 이를 알게 된 프라하 시의회는 천문시계를 독점하기 위해 새벽에 장정 다섯 명을 보내 시계공의 양팔과 양다리를 포박하고 불에 달군 인두로 눈을 지져버렸다.
이후 슬픈 마음을 안고 마지막으로 시계탑에 올라간 하누쉬가 손을 대자 시계는 그대로 작동을 멈추었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1860년이다. 전해 내려오는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1410년 카단(Kadan)의 시계공 미쿨라스와 카를 대학의 천문학 교수였던 얀 신델이 시계 장치와 글자판을 만들었고 1490년 이를 수리한 하누쉬가 아래쪽 시계 판을 설치했다는 게 진실이라고 알려진다.
16C 이래 자주 시계가 멈추었지만 그때마다 보수했고 1865년에는 사도들의 행진(The Walk of the Apostles)이라고 불리는 움직이는 사도의 상이 추가되었다. 1870년에는 시계 아래쪽에 캘린더가 더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2차대전 때 불타 손상된 것을 1948년에 복구하고 1979년에 또 보수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도 그러했고 현재까지도 때를 알려주는 천문시계는 시계꽃과 궤를 같이하는 듯하다.
시계꽃은 쌍떡잎식물 아열대 상록 덩굴성 다년초로 꽃은 다섯 갈래 수술과 구불구불한 부화 관의 모습이 특징이다. 꽃 모양이 개성이 있고 특이하며 예뻐서 관상용으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재배하고 있다. 하나의 꽃이 지면 다른 줄기에서 다시 꽃이 피어나 초가을까지 계속 피는데 아름답다.
우리나라에서는 적당한 크기를 구매해서 조금 큰 화분에 옮긴 뒤 비료 주고 키우면 집에서 재배한 열매 패션후르츠(passion fruits)를 먹을 수 있다. 꽃말은 ‘성스러운 사랑, 신앙, 종교적 열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