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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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운다 
  • 정홍용 안남화인산림욕장 대표
  • 승인 2019.09.2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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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용 안남화인산림욕장 대표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가지 형태의 울음에 마주할 때가 있다.

울음이야말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갖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너무 즐겁고 기뻐서 우는 환희의 울음, 분노를 제어할 수 없어 화산처럼 폭발하는 분노의 울음, 너무 슬퍼서 우는 슬픔의 울음, 공포에 사로잡혀 떠는 울음, 소원을 하소연하는 애절한 울음, 지난 일을 생각하며 우는 참회와 회한의 울움, 자기 스스로 마음으로 삭히는 조용한 울음을 꼽을 수 있겠다. 나무도 운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지만 이 믿기지 않는 일이 사실임을 알고 필자도 놀랐다.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하면 빙점(氷点)이란 소설이 먼저 떠오르는데, 1963년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 창간 85주년 기념 1천만엥 고료 공모전에 입선되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친 소설이다.

필자도 많은 감명을 받았기에 1987년 2월 초에 침대 관계 일로 삿뽀로(札幌=Sapporo)에 있는 Nitori가구에 갈겹 미우라 여사를 만나기 위해 靑森(Aomori))에서 函館(Hakodate)행 연락선을 탔다. 푸른 파도를 보며 이 배가 침몰시에 빙점 소설 속에 나오는 미국인 선교사처럼 구명복을 선뜻 타인에게 내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도 해  보았다.

旭川(Asahikawa)는 北海道(Hokkaido)의 거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고, 이웃에 大雪山(Daisetsuzan) 국립공원이 있어 일본에서 가장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삿포로에 있는 立川(Tachikawa) 여관은 선친께서 수십 년간 이용하신 곳이므로 일부러 거기에 묵으러 갔더니 여관집 아주머니가 처음 갔을 때처럼 뛸 듯이 기뻐하며 맞아 주셨다. 여관집 아주머니는 자네 아버님은 너무나 명필이므로 자기네 여관의 자랑거리라며 지난번과 같이 두꺼운 숙박부를 여러 권 들고나와 아버님 필체를 보여 주시면서 근황을 물으셨다. 작년 3월에 돌아가셔서 일부러 전하러 왔다고 했더니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갑자기 복받치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지 “그렇게 풍채 좋고 훌륭한 분이 돌아가시다니...” 한숨을 쉬면서 흐르는 눈물을 계속 훔치고 계셨다. 엇저녁 다찌가와 여관에서 미우라 여사에게 미리 전화를 해두었지만, 아사히가와 역에 내려서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자택에 도착하니 미우라 여사께서 몸소 문전까지 나와 반갑게 맞아주며 차를 내오셨다.

일본의 전형적인 순박한 촌부(村婦)로 보였고, 어디서 저런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는 저력이 있었을까 의문이 갔다. ‘양치는 언덕’이란 그녀의 소설을 읽어서 익히 알았지만, 그녀는 일본에서 특이하게도 크리스찬이었다. 일본에 천주교, 개신교 몽땅 합해 보아도 신자가 고작 국민의 2%도 채 안되는 데도... 더구나 교인들이 많이 몰려있는 큰 항구인 函館(Hakodate), 仙台(Sendai), 東京(Tokyo), 横浜(Yokohama)) 大阪(Osaka), 神戸(Kobe), 福岡(Fukuoka), 鹿児島(Kagoshima), 長崎(Nagasaki)도 아닌 북해도 중앙부 산악지역인 아사히가와에 크리스찬이 있다니 일본에서는 참으로 희귀한 일이다.

미우라 여사는 필자가 온천 마니아(Manla=애호가)라고 하니 기억에 남을 곳이라며 몸소 추천하여 조금 멀지만 계곡에서 천연온수가 무제한으로 흘러내리는 노천탕으로 유명한  吹上(Fukiage)온천(20년간 전일본국민들을 웃고 울린 인기 명작 드라마 ‘北の国から(북의 나라에서)’에서도 나와 더욱 유명해진 온천)을 소개하여 근처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주위는 2,000m 전후의 산으로 둘레 싸인 곳으로 눈이 10m 이상 쌓여 있는데도  온천물은 계곡을 가르며 흘러내려 야외 온천탕을 채운 후 계곡을 따라 계속 흘러내려가는 묘한 곳이다. 거기에다 무료인데도 손님이 없어 전세나 다름 없었다.

북해도의 눈은 4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어 습기가 많아 유별나게 크고 부드러워 알밤 같은 눈송이가 펑펑 내리는 칠흑 같은 밤에 온천물에 몸을 담고 명상에 잠겨 있는데 어디서 소총 총성이 간헐적으로 끊이지 않고 계속 들여왔다. 여관 주인에게 혹시 육상자위대원들이 이 근처에서 야간기동훈련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자지러지게 웃고 난 후 정색을 하며 설명해 주었다.
저 소리는 총소리가 아니고 나무가 영하 30~35도에 이르면 도레쓰(凍裂)라고 하여 나무가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표피가 찢어지는 소리로 자기들은 누구나 나무가 울부짖는 소리라고 한단다.

그 후에도  나무의 울음소리는 알라스카(Alaska) 페어뱅크스(Fairbanks) 교외 숲속 통나무집에서 극광을 본 후 잘때에도 밤의 적막을 깨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산타크로스가 살고 있다는 마을로 유명한 핀란드의 로바니에미(Rovaniemi)에서 묵을 때에도 고요한 밤을 깨는 나무들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캐롤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어둠에 묵힌 밤’이 무색할 정도였다. 노르웨이 출신 에드바르 뭉크(Edbard Munch)가 절규(絶叫=The Scream)라는 명화를 남겼다.

사람에 따라 해석의 각도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필자로서는 뭉크의 ‘절규’를 대할 때마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겨울이 몹시 춥고 극광(極光=Auroa)이 자주 나타나므로 오로라의 현란한 색채 속에 나무들의 울부짖음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 약 1년반 동안 저의 미천한 ‘나무 이야기’를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아울러 이 허접한 ‘나무 이야기’를 연재해 주신 옥천향수신문사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이것으로 제가 취급했고 경험했던  ‘나무 이야기’를 종료합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안남화인산림욕장 정홍용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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