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결록에 명당풍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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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결록에 명당풍수(상)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4.2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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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연 충청현공풍수연구원장

1.군서면 하동리 변전소의 옥녀 탄금형

원문 : 沃川西十里玉女彈琴形 穴在最高卯來乙作丙午得戌破右橫琴 左舞童 當代發三代發百子千孫之地

해석 : 옥천서쪽10리 옥녀탄금형 혈의 최고 높은 동쪽에서 을작하여 오득하여 술파 함. 우측으로 거문고를 끼고 있고 좌측에는 춤추는 아이가 있다. 당대 발복하고 3대 발복으로 백자천손지지이다.

해설 : 옥녀탄금형
하동리에는 옥천읍 양수리와 하동리 옥녀봉 마을 사이에 있는 용봉에 용봉산성이 있다. 군서면 하동리와 동평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하도 고와서 옥녀가 단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의 옥녀 단좌형(玉女端坐形)이라고 한다.

옥녀봉 기슭에 자리 잡은 옥녀봉 마을에는 ‘옥녀탄금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진다. 옛날 늙은 부모가 늦게 얻은 딸 옥녀가 가야금을 잘 타는 등 출중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미처 꽃봉오리도 펴보지 못한 채 돌림병으로 죽자 옥녀를 뒷산에 묻고 산 이름을 ‘옥녀봉’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수많은 풍수 객들이 옥녀봉을 보고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라고 감탄하였는데 이 산 앞의 넓은 들은 ‘장고벌’이라는 넓은 평지가 있어 그곳 지형이 잘 어울리는 명당자리였다고 한다.

1975년 옥녀봉 마을 뒤에 한국전력 신 옥천전력소가 들어서면서 송전선 12줄이 가야금 줄과 똑같다 하여 옛 전설과 상통하고 있다는 묘한 여운을 남기게 하고 있다. 이때 옥녀봉일대에 묘지를 이장할시 명당터이기에 층층이 밀장을 하여 명당임을 증명해주었다.

2. 오동제월형

원문 : 沃川西十里 東五里五棟里越品霽月形 辛來酉作丁得艮破三台案

해석 : 옥천서10리 동오리 오동리 월품제월형으로서 신래유작하여 간파 안산에 3개의 산이 있다.

3. 사양리 선인독서형

원문 : 沃川養心里 仙人讀書形 書案案申來庚作巽巳得丑破 當代發 文章才華名公巨卿連出之地

해석 : 옥천 양심리(書聲洞) 선인 독서형으로 안산은 책상이 있고 신래 경작하여 손사득하여 축파 당대발복하고 문장의 재주가 휼륭한 이름(연예인)이 나고 커다란 벼슬이 연달아 나는 지지이다.

해설 : 서성골에는 선인독서(仙人讀書)의 명당이 있다고 전하니, 선비들의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선비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전한다. 대전의 국회의원 출신의 조상 묘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묘를 이장을 하고 나서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속설이 있다.

4. 사양리 금계포란형

원문 : 沃川舍音洞內有啄匙洞鷄峙上初起落脉 辛兌下 酉坐巳得丑破 金鷄抱卵形北有望德山 西有飾粧山 南有西垈山 縣莊岩左有長竹洞 前有雄拘洞 且有小鷄峙朴姓用則當代發福累代公卿 王妃 一貴人五文章賢俊不 其數 百子千孫萬代榮華地 沃川望德山下 直龍來 十二節下乾亥回頭 壬坐坤申得辰破 當代發 萬代榮華之地名 公巨卿連出八九代

해석 : 옥천사음동내에 탁시동 계치(닭재)상에 초기락맥하여 신태하 유좌 사득 축파한다. 금계 포란형은 북쪽에 망덕산이 있고 서쪽에는 식장산이 있고, 남쪽에는 서대산의 장엄하고 뚜렷한 바위가 좌측에 있다.

장죽동(뱀골) 앞에는 웅구동(숫개골)이 있고 또 작은 닭치가 있고 박성이 사용하고 있으며 즉시 당대 발복하여 대를 이어 가면서 벼슬을 하고 왕비가 나고 귀인이 나고, 다섯 문장가가 현준한 인물이 부지수로 나온다. 백자천손만대 영화지지이다.

옥천 망덕산 아래 직룡해서 오는 12굽이굽이 건해로 머리를 돌려 임좌 곤신 득하고 진파하여 당대 발복 만대영화지지이고 이름 널리 알리는 커다란 벼슬이 나와서 8-9대 연속으로 나온다.

해설 :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에 묘를 쓰면 당대에 발복을 한다고 전해지는데, 대전의 모 기업의 조상이 계신다. 또한 금계포란형에 석물을 설치하게 되면 집안이 쇠락해진다.

5. 상지리 작약미발형

원문 : 沃川西垈山肖有芍藥未發形 午坐子向子破後看似卧蚕前看峯登然後有大 石而不見前有雙岩패大立而不見

해석 : 옥천 서대산 닮은 작약미발형으로서 오좌자향 자파로 뒤를 보면 누에가 누운 소 같고, 앞을 보면 봉우리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고 그 뒤에는 커다란 돌을 볼 수 있다. 앞에는 쌍석이 크게 가로막아 볼 수 없다.

해설 : '작약미발(芍藥未發)'형(함박꽃봉오리 모양의 지형)의 명당이 있는 곳으로 전한다. 이 명당은 토정비결을 만들어낸 토정이지함 선생의 전설과 연관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토정 선생이 전국의 산하를 두루 돌아다닐 무렵, 옥천 땅에 들어서서는 작약미발형의 명당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자신만이 아는 표식을 해두고 돌아갔다가 갑자기 죽음에 이르러 후손 등에게 미처 그 위치를 가르쳐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한다.

그 위치는 토정 선생 이외에 충실한 하인인 신개라는 사람만이 알아 토정의 시신을 모시고 묘 자리를 찾으러 오던 도중 공교롭게도 신개마저 급사, 천하의 명당은 끝내 찾지 못하고 도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그 내용이다.

지금도 신개가 죽었다는 곳은 '신각'이라고 하여 군서면 은행리 쯤에 아직도 지명이 전해진다. 신개는 죽을 당시 '삼밭' 이란 말만 남기고 죽었다는데 이 말은 지금의 사정리 마전동과 지명이 일치해 마전동이 그 위치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남았다.

또한 지명과 관련해서는 훗날의 얘기이겠으나 마전동 국도변에 함박꽃상회라는 상호가 있어 구색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예부터 전해오는 작약미발형의 명당을 찾으러 오는 전국 풍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흥미로운 얘기꺼리다.

토정 이지함 선생은 결국에 옥천으로 못 오시고, 충남 대천에 묘지를 모셨다. 이외에도 군서는 좋은 명당이 산재 되어있고, 이외에 이원면도 많은 명당이 있기에 우암 송시열선생님과 백촌 김문기 선생님을 비롯 현대에 양궁의 박경모 선수와 김우진선수가 올림픽금메달과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석권하는 원인인 듯하다.

청주의 김수녕 선수는 양궁으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김수녕 양궁경기장과 훈련장을 설립하였다. 이원면에 작은 마을에서 두 명씩이나 금메달을 배출하였고, 장찬리 저수지 주변에 수려한 경관과 풍수적으로 우아한 곳에 박경모 · 김우진 양궁경기장을 설립하는 것을 후대에 뜻 깊은 일인 듯하다.

옥천에는 명당 결록이 35개정도 있고 다음호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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