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심겨진 꽃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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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심겨진 꽃씨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4.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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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옥천지역인권센터복지국장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40년 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어떨까 궁금했다.

외국에 나가 살다 4년 전에 한국에 들어와 살며 내 소식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 내 연락처를 알아냈단다. 교회로 전화했다가 남편이 받아 내게 연락처를 알려준 것이다. 통화를 하며 서로의 이름을 몇 번 확인 했다.

“맞구나... 너... 목소리가 너네...”

우린 대화를 하며 흐릿해진 기억들이 선명해질 때마다 중간 중간 탄성을 지르며 깊은 잠을 자던 기억 퍼즐 맞추기를 했다. 그리고 가까이 대전에서 사업을 한다기에 만나기로 했다.

40년이란 세월의 길고 깊은 강을 앞에 두고 약속한 날을 기다리며 마음이 설렜다. 언젠가 오래 헤어졌던 만남을 주선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귀에 익숙한 배경음악과 함께 만남의 감격으로 얼싸안고 좋아하던 모습들이 눈에 선했다.

우리의 만남은 어떨까? '무엇을 입고 나가지? 화장은? 머리는?'

누가 촬영 오는 것도 아닌데 초라하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이 감정은 무얼까?

여고시절 우리는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교복 칼라에 풀을 먹여 빳빳하게 하고 바지 주름을 칼날처럼 다리미질하여 세워 입고 나가면 남학생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문득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기쁨이 될 선물을 주고 싶었다. 얼마 전 회갑을 맞게 된 지인의 남편에게 노오란 후리지아 꽃다발을 선물 했는데 당사자보다 아내가 소녀처럼 얼굴이 발그스레해지며 좋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꽃을 한 다발 사들고 가야지'

빠알간 장미 한 다발을 샀다. 가슴에 안으니 40년 세월의 흔적이 꽃의 화려함에 묻히는 것 같았다. 몇 번씩 전화로 길을 물어 찾아갔다. 사업을 하는 친구 부부는 분주히 손님을 맞느라 첫 만남을 눈인사로 기다리라고 했다.

‘ 내 친구 맞나?’

세련되진 그녀에게서 옛 모습 찾기가 어려웠다. 꽃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약간은 당황해서 진짜 그 친구인지 유심히 살피며 기다렸다. 손님이 나간 후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반갑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겨우 옛날 모습이 스쳤다.

그리고나서 나를 잡고 흔드는 제스처, 깔깔거리며 모습, 애교스런 말투... 긴 세월을 건너 마술처럼 내 앞에 나타난 친구가 맞았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은 키도 크고 잘 생겼었지... 집안도 좋고... 잘 살고... 말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내가 너무 사랑해서 결혼해야 한다고 우겼지... 그런데... 결국 여자 문제로... 이혼하고... 난 이 나라를 떠났지... 그리고 거기서 새 남편을 만나고...“

“딸을 결혼 시켰어... 근데 난 뒤에 서서 보다 나왔지... 새 엄마가... 나를 보는 딸의 그렁거리는 눈을 더 볼 수가 없었어...”

친구는 담담하게 말했다. 참 예쁘고 발랄하고 영리했던 그녀는 힘든 결혼 생활의 아픈 상처를 깊은 강밑으로 던져두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말을 바꿨다.

"얘! 넌 그대로다... 어떻게 꽃을 들고 올 생각을 했어? 감동이야..."

자기 스스로 연민에 빠져드는 것을 막고 싶었나보다. 참 꿈도 많고 재능도 많았던 친구였다. 여고시절 그 친구를 생각하면 '한여름 밤에 빛나는 별들'이 떠올랐다. 아직 다 피지 않은 빠알간 장미가 멍든 그녀의 가슴속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친구야 ... 이제 네 가슴속에 몽우리 진 꽃들을 활짝 피워 행복해지기를 바래'

도로변에 늘어선 벚꽃들이 흩날리고 있다. 흐드러지게 피어 눈부시게 하얀 꽃들이 먼 옛날의 그리움을 어루만져 주었다.

꽃비가 내렸다. 차에서 내려 꽃비를 맞았다. 교정에서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까르르 웃던 웃음이 하얗게 흩어졌다가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다양한 색깔의 꽃이 자기의 때에 피어나 향기를 내듯 사람들의 삶도 피어날 때가 각자 다를 것이다.

상처가 아물기까지 먼 길을 돌아 내 나라에 온 친구가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친구의 가슴속에 심겨졌던 많은 꽃씨들이 하나 둘 움트기를 바랬다.

아! 친구와 내가 함께 가슴에 심었던 그 꽃씨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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