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의 정지용詩 다시 읽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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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정지용詩 다시 읽기(7)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5.1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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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 고향 황톳빛 짙은 농촌의 정감을 안겨주는 주옥같은 시로 ‘현대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정지용 시인의 작품을 쉽게 이해하는 공간을 마련한다. 본란은 현대어로 풀어 놓은 시와 해설을 겸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매주 게재된다. <편집자 주>

 

어부엉이 울던 밤
누나의 이야기-

파랑병을 깨치면
금시 파랑 바다.

빨강병을 깨치면
금시 빨강 바다.

뻐꾸기 울던 날
누나 시집 갔네-

파랑병을 깨트려
하늘 혼자 보고.

빨강병을 깨트려
하늘 혼자 보고.

■ 작품 해설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구읍에서 향수 30리길을 따라 장계유원지에 이르면 시가 있는 호숫가 ‘멋진 신세계’가 있다. 이곳은 정지용의 시문학세계에 빗대어 공공예술로 빚어낸 시문학 아트밸리이다. 정지용 시인의 「꽃과 벗」 시어에서 따온 ‘일곱걸음 산책로’는 그의 시와 정지용문학상 시비 및 조형물로 이루어진 문학 산책로이다. 대청호로 이어지는 금강 물길을 따라 시를 음미하다보면 그 풍경 속에 독특한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병」이라는 작품이다.

이 시는 ‘누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고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그 세계는 과거와 현재의 대립적 관계로 누나와 함께 있었던 행복한 시절과 누나가 가고 없는 불행한 시절로 대비된다. 하지만 누나에 대한 기억이 현재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인 것으로 보아 연속성을 띠고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파랑병을 깨트려 / 하늘 혼자 보고 // 빨강병을 깨트려 / 하늘 혼자 보고”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낮시간과 붉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즉,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언제든 누나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특히 반복적으로 쓰인 ‘하늘 혼자 보고’에서 누나에 대한 그리움과 화자 자신의 외로움이 고조되어 그 그리움의 깊이가 배가 된다. 지용이 객지의 외로움에서 기억해낸 것은 어린 시절의 얼굴들이었으며, 그가 선택한 장르는 동시였다. 그 특징은 동심의 고독과 동경이다. 이 같은 의식세계는 그가 독자로 태어나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유년을 외롭게 보낸 것과도 연관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정지용의 동시에 가족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때 그 상태는 자아의 외로움을 표상하기 위한 의미로 나타나고, 현재의 상태에 집중되어 있다. 그 궁극적 원인이 이별의 문제가 아니라 부재와 외로움에서 기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울 혼자 보고」라는 원래의 제목이 시적 의미상으로 화자의 내면적 정서를 더욱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대개는 어린 시절이 고생스러웠더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 미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지용은 그의 어린 시절을 고독하고 슬프게 떠올린다. 이것은 그의 개인적인 심정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하더라도 당시 시대적인 문제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정지용의 동시 가운데 시간적 이항대립을 시의 기본적인 구성으로 삼는 시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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