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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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투어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6.0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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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옥천지역인권센터복지국장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마음이 흔들렸다.

‘가야 하나?....다음으로 미룰까?’ 바람에 우당탕거리는 창밖에 소리는 더욱 내 마음을 망설이게 했다.

지난 설날 친정에 갔을 때 90세를 바라보는 친정아버지의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 없이 슬퍼졌다. 아버지는 젊었을 적 영민하셔서 기억력이 무척 뛰어난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치매증상을 앓으시니 어찌 마음이 서글프지 않겠는가.

아마도 치매 초기 증상인 것 같다. 올 들어 부쩍 기억력이 혼미해질 때가 있어서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부모님은 우리 곁에 몇 년이나 더 계실까? 더 살아계신다 해도 자녀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수술 후 다리가 불편하여 양쪽에 지팡이를 짚어야 거동하는 친정 엄마와 다리의 힘이 쇠약해져서 전동차를 타고 다니시는 아버지 두 분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계신다.

자식들이 아무리 효도를 잘한다한들 부모님 서로 간에 의지와 배려로 살아가시는 그것과 비교가 될 수 있을까.

설날 함께 지내며 번뜩 내 자식을 키우느라 바쁘다고, 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것이 훗날에 후회함으로 눈물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꼭 찾아뵙기로 마음을 먹었다. 3, 4월 혼자서 친정에 갔다.

친정을 가기 위해 나서는 길은 행복했다. 가는 길은 멀고 복잡하지만 그동안 뵙지 못했던 부모님들을 뵙게 되어 마음에는 반가움이 먼저 한가득이다.

부모 자식 간에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천륜이라 하던가.

친정인 인천에 가려면 기차에서 내려 전철을 갈아타고 또 버스를 타고 걸어가야 한다.

번거롭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즐거운 여행길이 되었다.

5월은 어버이날도 있고 엄마 생신날도 있으나 직장에 매인 몸이라 내가 쉬는 날에 남편과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곳에 나가 바람을 쐬어 드리기로 했다.

마침 인천과 가까운 고양시에 꽃 박람회를 한다기에 그곳에 가기로 계획을 잡았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를 계획하는 일은 가슴 벅차고 즐겁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때 비와 함께 강풍이 불어 마음을 심란하게 했지만 잠시 망설임을 접고 강행했다.

평생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댔는데 이제 날씨 탓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주님....바람을 잠재워 주세요...비를 멈추어 주세요...”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강풍에 차가 흔들리기도 했다. 친정집에 지금 가고 있다고 전화를 하니 “뭐라고? 여길 온다구?...이 날씨에 어딜가? 우리 안 간다...오지마라...” 예상대로 친정 엄마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럴 것 같아서 출발 후 전화를 한 것이다. 밤늦게 도착한 딸과 사위를 반갑게 맞이 했지만 다음날 예정된 꽃 박람회는 가지 않으시겠다고 버티셨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비는 멈추었고 바람도 조금 잠잠해지고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 것이다. 좋아지는 날씨는 부모님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어젯밤 가시지 않겠다던 두 분은 옷을 갈아입으며 “이 옷 어떠니?...이건 색이 좀 그렇지?...” 하며 소풍가는 어린애들 같았다. 차를 타고 창밖을 보니 해를 받아 반짝이는 초록의 나뭇잎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우리 생애에 부모님과 함께 아름다운 봄날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꽃 박람회장에 가서 휠체어를 두 대 빌렸다. 두 분을 태우고 휠체어를 밀어드리며 이곳저곳을 다녔다.

어제 비가 온 탓에 더 화창한 날씨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제 빛을 선명하게 뿜어내며 맞이했다.

불어오는 바람으로 꽃향기는 온 몸을 적셨고 나뭇잎들은 춤을 추어 더 생생하고 멋진 꽃 박람회를 연출했다.

아름다운 정경 속에 마음껏 즐기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니 아! 이 세상에는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하는 마음이들었다.

자식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은 다소 이기적인 마음이 들어있지만 부모님이 자식 생각하는 마음에는 전혀 그런 마음들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두 분은 사진을 찍어드리며 웃으라고 소리쳐야 이를 드러내며 애써 웃으셨다. 그런데 사위가 딸을 모델로 사진을 찍어 줄 때는 소리 내어 웃기도하고 흡족한 미소를 보내시는 게 아닌가? 내가 어린아이처럼 친정 부모님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으니 나중엔 포즈까지 코치 하시며 즐거워하셨다.

“고맙다...고맙다...좋다...네가 좋아하는 걸 보니 더 좋다...”

부모에게 자식만큼 더 좋은 선물이 또 있을까?좋았다구 고맙다구 자꾸자꾸 말씀하시는 부모님이 어린아이 같았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지나는 젊은 부부가 두 대의 휠체어에 탄 우리 노부모님을 바라보았다.

크고 둥근 휠체어 바퀴가 굴러가듯 우리의 인생도 굴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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