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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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6.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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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수필가

하늘 꼭대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열기로 숨조차 쉬기 힘들다.

내리 꽂히는 태양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도심은 몸 하나 숨길 수 있는 그늘조차 변변치 않다. 8월의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걷다보니 발걸음이 자꾸 나무그늘로 향한다.

지친 걸음을 걷다가도 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서면 온몸에 생기가 돌고 시원해진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땀으로 젖어있는 머리를 만지며 바닥을 바라보니 발아래 개미떼들이 몰려다니는 것도 보이고, 매미 소리도 들려온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듯 금방 기분이 상쾌해진다.

지난 겨울 앙상했던 나무가 올 여름에 풍성한 그늘로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주니 참으로 감사하다.

초록으로 짙게 드리우는 나무가 없었다면 이 폭염의 거리를 걷기가 얼마나 힘이 들까. 나무는 그늘을 통해 나무로서의 고유한 모성적 존재성을 드러내는지 모른다. 플라타너스와 느티나무의 그늘처럼 나에게도 그런 그늘이 있을까? 있다면 어떠한 그늘로 존재할까 생각하니 문득 지나왔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자리엔 자신조차 쉬기 어려운 작은 그늘만이 있는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내 곁에서 누군가 편히 쉬고 갈만한 그늘을 가질 만도 하건만 아직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한가보다.

우선 작은 울타리부터 만들어야겠다. 무엇보다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야겠다. 힘들었던 고통의 그늘이라 할지라도 감추지 말고 드러내어 누구든 찾아와서 시원하게 쉴 수 있게 하고 싶다.

나무가 겨울에 모진 비바람을 맞아가며 견뎌 내고 여름엔 그늘을 드러내듯이 나 또한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자세로 그늘을 드러내야겠다. 그래야만 나 자신부터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만 내 주변 사람들도 내 그늘에서 편히 쉴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삶은 그늘과 햇볕이라는 양면성 속에 서로 다르면서 꼭 필요한 존재로 살아간다.

햇볕이 있어야 그늘이 있고 그늘이 있어야 햇볕이 있듯이. 둘은 동질의 존재인데 나는 항상 밝은 면만을 갈구해 왔고, 그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햇볕아래 그늘이 존재하는 것도 잊은채 어리석은 희망을 안고 이제껏 애쓰며 살아온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어스름한 밤하늘에 별이 손만 뻗치면 곧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먼 지평선 끝에 샛노란 오렌지를 반으로 뚝 잘라놓은 듯한반달이 떠오르면 모깃불을 지펴놓고 갓뜯어온 보리를 불에 그슬려 손바닥으로 비벼 먹던 기억.

그때의 그늘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립다. 그 시절 내게는 그늘은 없었고 환하게 반짝이는 빛만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강한 햇볕에 검게 그을린 부모님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의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삶에 순응하며 인내하시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며 사셨기에 그토록 편안한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알 것 같은 나이가 되었는데 그런 모습으로 지낼 수 없음은 아직 욕심의 강을 건너지 못한 탓이리라.

때로는 고통의 비바람도 불어야하고 절망의 눈보라도 몰아쳐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대지에서 자란 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 숲 그늘에 앉아 쉬었다 갈수 있지 않는가.

누구든 그늘 없는 삶은 없을 것이다.

그 갈등과 부정의 그늘 속에서 얼마만큼 이해와 긍정의 그늘을 만들어 가느냐가 관건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다 주고도 행복한 그러고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의 의자를 나의 그늘에 준비해야겠다.

그곳에서 다정하게 쉬고 있는 여러 모습이 떠올라 순간 행복감에 젖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한숨 돌릴 수 있는 작은 나무 그늘이 바람에 손짓하며 넉넉한 웃음을 안겨주는 여름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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