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현실의 극복과 견딤의 詩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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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현실의 극복과 견딤의 詩作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0.03.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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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김묘순 문학평론가

정지용은 동요풍의 동시에서 가족들과 선택할 수 없는 이별을 하거나 헤어짐을 종용하는 것으로 나타낸다. 이는 그가 겪었을 불우했던 유년시절을 극복하는 견딤의 일종에서 작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詩’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진절머리 나게 힘들었던 경험과 현실을 견뎌내며 탈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만일 ‘詩’를 쓰지 않았다면 개인적인 고통에 더해 일제강점기라는 사회현실의 끔찍한 상처를 견뎌내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칼 로저스(Carl Rogers)는 “불우한 유년시절의 체험은 자존심 욕구의 상실로 인해 편향적 가족애, 자기학대, 좌절의식 등을 유발한다. 반면 선천적으로 성취동기가 강한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이것을 극복하고 자아실현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여 자아실현을 달성할 때가 많다”(Carl Rogers, 『The Clinical Treatment of Problem Child』, Boston:Houghton Mifflin, 1939, 211-215면, 286-288면)고 한다. 정지용 문학의 경우 유년시절에 경험한 불우한 요소들은 그의 「고향」에 상실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유별난 가족애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유별난 가족들은 「서한울」, 「한울혼자보고」, 「산소」, 「레(人形)와아주머니」에서 모두 멀리 떠나거나 혹은 떠나보내는 모티프로 설정해두고 있다.

 
우리 옵바 가신 고슨
해ㅅ님 지는 西海 건너
멀니 멀니 가섯 다네.
웬일 인가 저 하눌 이
피ㅅ빗 보담 무섭 구나.
날리 낫나. 불이 낫나.

- 「서한울」 전문 (학조1호, 1926. 6, 105면)
「서한울」에서 화자의 오빠는 “西海”를 “건너”가고 말았다. 서방정토를 의미하는 “西海”를 “건너” 멀리 가버린 것이다. 화자는 이러한 현실이 “무섭”다고 직설적으로 토로한다.
 
부에ㅇ이 우든밤
누나의 니얘기 -
(중략)
국이 우든 날
누나 시집 갓네 -
-「한울혼자보고」 중에서 (학조1호, 1926. 6. 106면)

「한울혼자보고」에서 화자는 부엉이가 울던 밤에 옛이야기를 나누었을 법한 “누나”를 뻐꾸기가 울던 날 시집을 보내고 만다. 아니 화자의 행위는 보낸 것이 아니다. 시적 대상인 “누나”가 “시집”을 간 것이다.
 
서낭산 골 시오리 뒤 로 두고
어린 누의 산소 를 뭇고 왓소.
해 마다 봄ㅅ바람 불어 를 오면
나드리 간 집 새 차저 가라 고
남 먼히 피는 츨 심 고 왓 소.
-「산소」 전문(신소년5권 3호, 1927. 3, 46면)
 
「산소」에서 시적 화자는 “어린 누의”마저 “서낭산 골”에 “뭇(묻)고” 온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바라본 화자는 무한한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상실감의 치유 행위로 “남 먼히 피는 츨(꽃을) 심고” 돌아온다.
 
레와 작은 아주머니
앵도 나무 미테서
쑥 더다가
피 만들어
호. 호. 잠들여 노코
냥. 냥. 잘도먹엇다.
중. 중. 중.
우리 애기 상제 로 사갑소.

-「레(人形)와아주머니」 전문(학조1호, 1926. 6. 106면)
「레(人形)와아주머니」에서 화자는 “피”을 “만들어” 맛있게 먹는다. 실제로 이러한 모습은 당시 시골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풍경이었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 중에 화자는 느닷없이 반전을 일으킨다. 가족 구성원 중에 가장 힘없고 연약한 존재인 “우리 애기”를 “상제”로 “사가”라는 제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준 화자는 다양한 각도에서 시적상상을 구사한다. 여성 화자로서 오빠가 죽는, 남성 화자로서 누나는 시집을 보낸다. 그리고 아기는 상제로 사가라는 뼈아픈 시상을 전개한다. 이들은 정지용 시집(시문학사, 1935)에 「서한울」은 「지는 해」로, 「하눌혼자보고」는 「병」으로, 「산소」는 같은 제목인 「산소」로, 「레(人形)와아주머니」는 「三月삼질날」과 「딸레」라는 두 개의 작품으로 재수록 된다.

정지용은 부친의 부재와 모친의 가출, 이복동생들과 궁핍한 가정환경 등으로 불우한 유년시절을 지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정지용 詩作은 일종의 불우했던 현실에 대한 도피처였을 것이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억압된 정서를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지용은 유년시절의 불우하고 자신의 힘으로 극복 불가능했던 억압되었던 정서를 주홍글씨처럼 안고 살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탈출하려한 견딤이 문학으로 견고히 다져졌고, 가족을 상실하는 설정의 詩들을 초기시에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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