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그것은 번뇌망상으로부터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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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그것은 번뇌망상으로부터 해탈
  • 도복희기자
  • 승인 2020.03.19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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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潭 노봉식 작가의 서각과 제2 인생
33년 영어교사 퇴임 후 서각과 만남
“나무 다루듯 그 사람의 결이 보인다”

 

퇴임한 후 시작한 서각은 또 다른 인생이 되었다. 나무에 글자를 새기고 있으면 모든 번뇌 망상이 사라진다는 송담(松潭) 노봉식(63) 작가의 작업실 허위재(虛僞哉)를 찾아갔다. 작업실 이름이 허위재다. ‘공허한 일을 하는구나’ 작가는 스스로 하는 일을 이같이 말하고 있었다. 모든 인생사가 공허한 것이고 그 공허함 속에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만 있을 뿐이라는 것. 신영복 선생이 쓴 ‘산’을 서각한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작가의 심성이 그대로 들어있는 작품이었다. ‘서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허함 가운데 싹을 틔우듯 창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공허에 새긴 글씨
“그대 영혼 속을 그린다/ 곁을 드리운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 짙은 마음은 그만/ 구름처럼 바람처럼 사라진다” 노봉식 작가가 쓴 ‘결’이란 시의 전문이다. 짙은 마음도 끝내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사라지고야말 번뇌일 뿐이다. 작가는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 나무의 결을 만진다. 그 결 안에 영혼을 그려나가고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나무의 결을 따라 파내려가는 과정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서각은 그가 순간을 사는 방법이다. 순간에 몰입하는 삶의 방식인 셈이다. 그 과정이 즐거움인 것이다. 작품을 시작하면 작업하는 시간이 따로 없다. 앉으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노봉식 작가
충북 청원군 낭성면이 그의 고향이다. 1980년 옥천공업고등학교가 그의 첫 발령지다. 이후 옥천중학교, 동이중학교, 옥천고등학교, 이원중학교 영어교사로 33년을 재직한다. 명예퇴직 7년 이 지났으니 꼬박 40년을 옥천에 거주하게 된다. 고향에서 보다 긴 세월 옥천에서 살아온 셈.
1년 4개월 전 이사한 옥천읍 양수리 청기와집은 15년 전 매입해 둔 곳이다. 10년 전 수리해 서각실로 사용하다가 새로 집을 짓고 이주했다.
 
△서각
10년 전에 처음 서각을 시작했다. 후배 교사의 제안이었다. 약속을 해서 시작했지만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는 후회했다. 자전거를 타거나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는 일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용제에 전시를 하고 민예총 군집개인전을 개최하면서 관람객들의 칭찬이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차츰 서각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나무를 여러 가지 종류로 시도해보자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나무마다 다른 특성
나뭇결에 따라 파는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 은행나무는 치면 떨어진다. 박달나무는 쪼개진다. 참죽나무, 대추나무가 서각을 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무난한 것은 산벚나무다. 팔만대장경의 80%가 산벚나무다, 돌배나무와 층층나무도 사용했다. 팔만대장경은 소금물에 절이고 말려서 사용했다. 은행나무는 연하고 무르기 때문에 일반여성들이 주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창칼로 하는 데 비해 노 작가는 끌을 이용해 서각을 한다. 가지고 있는 나무 종류만도 20~25 종류가 된다.
 
△결
그는 다양한 나무로 서각을 시도한다. 나무마다 다른 유형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결을 살리는 서각을 하고 싶어서다. 대추나무는 좋은데 단단해서 어렵다. 참죽나무가 서각에 가장 좋다. 그는 옥천에 거주하는 김성장 작가의 글씨와 정천영 작가의 판화를 서각했다.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노 작가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동문계서’ 800글자를 새기면서 이제야 조금은 서각을 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각은 여전히 끝없이 배워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색
제일 중요한 건 색칠이다. 바탕에 옻칠을 많이 한다. 참죽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는 칠이 필요 없다. 그대로 결을 살리면서 오일을 바른다. 은행나무는 옻칠을 한다. 생옻칠은 검게 된다. 계속 진하게 하려면 4~5번을 해야 한다, 반면 정제옻칠은 연하다. 붓질이나 수건으로 한다.
 
△깨달음
나무를 다루다 보면 차분해진다. ‘양각’을 하면서 끌로 치면 마음이 안정된다. 나뭇결을 다듬기 위해 80~320, 600~1000 번의 사포질을 하면 결을 보여준다. 나무가 속을 드러내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도 이와 같다. 인간 삶도 나무 다루듯이 이해하고 보듬어주면 그 사람의 결을 보여준다. 서각을 하면서 생각을 버린다. 좋아하고 싫어하고 화나고 기뻐하는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서각을 하는 순간은 이 모든 마음작용을 멈추게 된다. 스님이 절에서 수행을 하듯이 수행의 한 방식이다
.
 
△삶이 곧 작품
노봉식 작가는 “작품은 작가가 어떻게 생활했느냐에 따라 작품 가치가 천차만별”이라며 “나의 내면세계를 돌아보면서 작품 활동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탕이 안 된 상태로 영혼이 맑지 않으면 좋은 작품을 할 수가 없다”며 “맑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는 2년 후쯤 개인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인사동 진출도 생각하고 있다. 맑은 정신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파내려 간 그의 서각 작품 전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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