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째 이어온 나의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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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째 이어온 나의 보금자리
  • 도복희기자
  • 승인 2020.04.23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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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애 어르신의 고택 사랑
정헌애(91) 어르신이 기거하고 있는 고택에서 지나온 삶을 회상했다.
정헌애(91) 어르신이 기거하고 있는 고택에서 지나온 삶을 회상했다.

 

청산면 예곡리 정헌애(91) 어르신은 집 마당에서 봄 햇살을 받으며 쑥을 뜯고 있었다. 91세의 나이가 무색하다 할 만큼 정정한 모습이었다. 몇 백 년 버텨온 고택 역시 정 어르신의 손길 때문인지 정갈한 모습이었다. 24살에 시집와 살기 시작했으니 67년을 함께한 집이었다. 고조할아버지부터 5대가 살다간 집. 정 어르신이 살아온 동안만 지붕을 세 번 갈아 얹었다. 고조할아버지 대 수저 2벌과 젓가락 2벌을 가지고 들어온 청산면 예곡리, 물 서른 땅에서 벌을 치고 고조할머니가 길쌈을 해서 세간을 일구었다고 전해줬다.


정 어르신은 “처음에 시집오니 사는 게 어설펐다”며 “과일나무도 하나 없고 하늘이 작게 보여 답답했다”고 지나간 시간을 회상했다. 이어 “지금은 하늘이 넓어 보인다”는 말로 지나온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어르신은 “매일 살강에 국수와 밥을 한가득 해두었다”며 “배고픈 이들이 많던 시절 대문에 9~10명은 족히 되는 이들이 서 있으면 한 사발씩 밥을 나눠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 밥에 나물을 뜯어 한 식구가 연명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가난한 시절이었다. 배고픈 이들이 오면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먹을 게 없으면 냉수라도 떠서 내보냈단다.


정 어르신은 1974년 새마을 부녀회장으로 마을 일에 앞장섰다. 당시 새마을운동으로 상예곡에 5000여 평의 버려진 땅을 개간해 논을 만들어 충청북도 우수마을로 선정되는 경사를 일궈내기도 했다.


시집 와 20분마다 시아버지에게 술상을 차려 드리고 새벽으로 술국을 끓이기도 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신랑상, 일꾼상, 전부 독상을 차려야 했다. 대식구가 사니 매일 빨래가 가득했고 새벽까지 삼베옷을 다렸다. 15년 동안 수발한 시아버지는 정 어르신의 나이 35세 되던 해 운명을 달리한다.


모두가 가시고 혼자 남은 지금 정 어르신은 “혼자 있으니 자유롭긴 한데 사랑받을 일도 없다”며 “힘들고 고된 날들이었지만 한 집안의 며느리로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고 사랑받은 만큼 조심하며 살아왔다”고 지난 날을 회고했다.


이어 “시부모님에게 지극 정성으로 했다”며 “평생 살면서 후회는 없다”고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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