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가모가와(京都 鴨川)에서 만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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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가모가와(京都 鴨川)에서 만난 그리움
  • 오석륜 시인 인덕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6.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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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륜시인인덕대학교 교수
오석륜시인인덕대학교 교수
 
벌써 백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건만
정지용 시인을 기억하는 강가의 오랜 가옥들은
가모가와(鴨川)에 겨우 정취를 허락하는 빛바랜 그림자만 내어놓고
백 년 전 흑백사진 같은 그 그림자를 담아낼 물소리마저 희미하여
그때의 시름처럼 목이 자져 있었다.
여전히 풍경으로 보면 나그네가 정을 붙일 수가 없는
허허로운 진행형.
 
애초부터 거창하게 강물소리 하나만으로 이 고도(古都)를 지배하겠다는
꿈은 없었던 것일까.
물의 행로는 발을 더듬거리며 디디는 저속(低速)에 익숙해 있을 뿐이다.
강물이 뒤따라오는 강물의 손목을 힘겹게 잡아당기는 동안에도
걸림돌로 버티고 있는 듯한 조약돌,
견고한 쓸쓸함으로 자져 있기는 마찬가지.
군데군데 누런 살갗을 드러낸 모랫벌도
터줏대감처럼 책상다리를 하고 있었다.
 
이 자진 강으로,
십릿벌 가모가와로,
오리 떼가 날아들지도 모른다 싶어 이리저리 살피지만
강물에다 빛으로 발목을 적시려는 만추의 햇살만 허다하고
 
오랫동안 피었다가 지기를 되풀이했을 강변 갈대들의 목을 붙잡은 채
한여름 수박 속살 빛깔로 스며드는 가모가와의 석양 아래서
나는 연신 물을 들이켜고 있었지만
밀려드는 그리움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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