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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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보물
  • 나숙희수필가
  • 승인 2020.07.0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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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숙희 수필가
나숙희 수필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온 세상이 평온하기 그지없는 새벽녘이다. 오늘 산악회에 가기위해 남편은 일찍 일어나 필요한 물건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건강을 위해서 산을 다니고 한 오백년 살 것 처 럼 몸에 좋은 건강식품을 잘 챙겨먹는 남편이 고맙기만 하다.

남편과 나는 취미가 다른 이유로 늘 함께 하진 못하지만 서로 배려를 하면서 응원을 힘차게 해주고 있다. 서둘러 나가는 남편에게 가장 환한 미소로 오늘도 행복 하세요인사를 했더니 얼굴은 무표정해도 많이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계단을 내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평생 나의 든든한 보험을 들어놓은 것 같아 마음이 부자가 된 것 만 같았다. 오늘은 춥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나는 혼자 아침밥을 먹기 위해 작은 책상 하나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반찬 두 가지, 밥 반 공기를 올려놓으니 초라하기가 텅 빈 지갑을 보는 것만큼 이나 서글퍼진다. 그러나 몇 십 년 만에 한가로운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마음은 편안하다.

밥맛이 꿀맛이다. 세상이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그 책상위에 뜨거운 믹스커피 한잔을 올려놓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 저절로 소리가 난다. 소주 한잔에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처럼 믹스 커피 한잔에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침대위에 놓여져 있는 그 작은 책상은 남편이 주워온 것이다. 남편의 알뜰한 정신은 남들이 내다 버리는 오만가지 물건들을 집에 가져오는 바람에 짜증을 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 책상 두 개는 딱지도 떼지 않은 새 것 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간 것 같다.

그 책상을 지금껏 요긴하게 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기에 아주 알맞은 책상이다. 침대위에 떡하니 올려놓고 다리를 책상 밑으로 쭉 뻗고 간식을 먹으며 TV를 보아도 너무 편하다. 때론 밥상이 되기 도하고 커피잔을 기우는 작은 커피숍이 될 때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책상 앞에 앉아 많은 생각과 어제와 오늘을 오가며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외로움도 잊게 하는 요술 책상이다. 나의 소중한 보물단지가 되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오래전 사람들과 따뜻한 사랑을 한없이 퍼 나르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빠르고 느리게 달려온 아름다웠던 나의 삶 이야기도 멋지게 그려보는 시간을.

새해맞이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달력 한 장이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예전엔 새해가 올 때마다 설렘과 기쁨으로 가슴을 활짝 열고 힘차게 맞이했었는데, 지금 맞이하는 새해는 내 수명의 길이가 한 뼘씩이 아니라, 양팔을 쭉 뻗은 만큼이나 줄어드는 느낌에 생각이 깊어지기도 한다.

지금 내 눈앞에는 치울 것들이 내 손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고 책상 앞에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앉아있다. 어제 지인들과 가난의 상징이었던 옛날 보리밥을 먹었던 소박했던 행복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별미로 먹지만 보릿고개를 겪었던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후에 걸어보는 뚝 방 길이 새롭게 느껴졌다. 시골 냄새가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 것처럼 진했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어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엔 시어머니 마음만큼이나 커다란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지금도 싸리문 밖에서 한없이 기다리실 것만 같은 생각에 가슴이 저려온다.

남편이 주워온 책상 앞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가 기울 때까지 머물고 있다. 온갖 에너지를 쏟아 용서하는 법과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비싼 돈을 들여 강의를 들은것 만큼이나 뿌듯하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숨어 버렸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얼큰한 동태찌개를 빨리 끓여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커다란 무 하나를 꺼내어 듬성듬성 썰기 시작했다. 도마 위의 무 조각들이 생각의 편린처럼 누워있다.

내일은 보물책상 앞에서 어떤 소중한 일들을 떠올릴까. 하는 생각을 하니 소소한 행복감이 한없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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