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부터 연필화까지···황혼의 열정 ‘김명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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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부터 연필화까지···황혼의 열정 ‘김명자’ 작가
  • 김수연기자
  • 승인 2020.08.20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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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출신 53세 때 첫 서예 접한 후 다양한 예술
70세 때 전시회 열고 복지관 유치원에서 재능기부

 

김명자 작가의 연필화 작업
김명자 작가의 연필화 작업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 사회로 접어드는 요즘 노인들이 무기력함을 느끼는 현상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하거나 자식들을 모두 독립시킨 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여기, 무기력함을 느낄 새도 없이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서는 사람이 있다. 쉰 중반에 예술을 시작해 일흔 후반까지 쉼 없이 달려온 김명자 작가를 소개 한다.

 

김작가의 서예작품
김작가의 서예작품

 

군인에서 효부로, 그리고 작가로

강원도 주문진이 고향인 김명자(79) 작가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고등학교 졸업 후 여군 70기로 입대해 제대한 초창기 여군 출신이라는 것. 군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 후 제대한 김 작가는 남편의 고향 단양으로 이사가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대전시 외삼으로 이사해 1년에 열세 번도 넘는 제사를 모시며 효부로 소문났던 김 작가는 시부모께서 돌아가신 후 대전 시내로 이사했다.

어느 날, 김 작가는 농협을 방문했다. 그 날은 김 작가를 예술의 세계로 안내해 준 운명적인 날이었다. 김 작가는 농협 입구에 붙어있는 광고지를 보고 53세 때 처음으로 서예를 접하게 됐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 작가에게 새로운 예술 인생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예술의 지경을 넓혀가.

처음 서예에 빠진 김 작가는 이후 먹으로 농담을 조절하는 한국화에도 푹 빠졌다. 한동안 서예와 한국화에 빠져 붓을 놓지 않던 김 작가는 매일 시커먼 것(한국화)만 보다가 알록달록한 걸 보니 또 하고 싶어서 수채화도 시작했다고 전했다. 특히 김 작가는 꽃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계속해서 꽃을 그리다 보니 아예 꽃을 이용하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 김 작가의 다음 행선지는 얇은 꽃잎을 찢어질세라 곱게 펴 말린 후 주변에 그림을 그리는 압화였다. 압화를 어느 정도 배운 이후엔 종이접기에도 눈길이 갔다. 도자기에도 조금씩 관심이 갔다. 그렇게 김 작가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접었다.

 

종이접기로 만든 화병
종이접기로 만든 화병

 

일흔 나이에 전시회

집안 곳곳에 예술 작업의 결과물이 켜켜이 쌓여갈 무렵, 김 작가는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운 결과물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 2011년 대전 서구 문화원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전시회 작품들을 담은 상당한 두께의 도록도 출판했다. 그녀의 나이 70세였다. “전시회 이후 서예고 그림이고 손을 놨다라고 말한 김 작가. 그녀가 전시회를 기점으로 예술에 실증을 느낀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작가는 부채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걸 좋아한다.
김작가는 부채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걸 좋아한다.

 

라테아트, 새로운 도전

김 작가는 전시회 이후 당분간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위에 스팀 우유로 다양한 무늬를 넣는 라테아트에 눈길이 갔다. 그녀는 종이 대신 커피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커피 관련 자격증인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특히 필기시험은 커피와 관련된 영어 용어가 많이 나와 일흔이 넘은 김 작가가 공부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꾸준히 한국재능기부재단의 강의를 듣고 공부하고 연습한 결과, 그녀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김 작가는 칠십 평생 OMR마킹이라고는 모르다가 바리스타 시험 치면서 처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시험 합격 후 김 작가는 대전 경찰청의 카페에서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을 통해 3년간 근무를 지속했다.

 

김작가의 연필화가 방 한쪽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김작가의 연필화가 방 한쪽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귀촌, 새로운 삶

원래 대전에 거주했던 김 작가는 2016년 옥천 군북면으로 거처를 옮겼다. 군북면으로 이사 와서도 카페 일자리를 지속했으나, 옥천에서 대전 경찰청 방면까지 왕복하는 것은 김 작가가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체력을 요구했다. 결국 김 작가는 정들었던 카페 근무를 그만두고 옥천의 삼양초, 죽향초, 군남·군서·동이초병설유치원, 옥천·명지아동센터에서 풍선아트 수업을 시작했다. 후후 풍선을 불어 손으로 잘 다듬으면 강아지가 나왔고 왕관이 나왔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김 작가의 손끝을 바라봤다. 높은 학구열을 자랑하는 김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옥천의 노인대학을 졸업하고 청주의 노인지도자대학도 졸업했다. 쉰 중반에 시작해 여든 가까이에 이르기까지 김명자 작가는 말 그대로 쉼 없이 달려왔다.

현재는 다시 그림 그리기에 집중한다는 김명자 작가. 특히 연필화를 좋아하는 그녀는 코로나로 인해 옥천노인장애인복지관 연필화반의 개강이 취소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끊임없는 학구열과 창의력으로 나이와는 상관없는 열정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보여주는 김명자 작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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