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지 안에 담아내는 순수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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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선지 안에 담아내는 순수한 열정
  • 김수연기자
  • 승인 2020.12.03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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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노인장애인복지관 ‘동양화’반
동양화반 수강생들이 박홍순 강사의 지도에 귀 기울이고 있다.
동양화반 수강생들이 박홍순 강사의 지도에 귀 기울이고 있다.

월요일 오전 10시.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 101호 교실에선 화기애애한 담소와 함께 수업을 시작한다.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박홍순(62) 작가에게 그림을 배우는 복지관 동양화반 어르신들. 수업이 시작되면 수강생들은 각자 붓과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동양화반 학생들이 주로 그리는 그림은 수묵채색화. 조심스레 화선지를 자른 후 먹으로 선을 그리고 수채물감 묻힌 붓으로 조심스레 색을 칠한다. 마스크를 써서 답답할법한데도 화폭 위에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어르신들 얼굴에는 오직 그림 완성에 대한 열망만이 가득 뿜어져 나왔다. 


서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끔 무릎이 시큰거리지만 붓을 잡으면 한나절 그 이상도 꼼짝없이 서 있게 되니 아무래도 그림은 육체적 고통마저 잊게 하나보다.
동양화반에는 제시된 주제가 없다. 대신 각자의 능력과 취향에 맞춰 자유롭게 주제를 정한 후 아름다운 꽃과 소나무 그리고 산수를 화선지 안에 담아내곤 한다. 
박 강사는 “초기엔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렸지만 대부분 배우신지 오래돼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와 잘 그리는 분야가 달라 이제 주제를 따로 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옥천미술협회 회원이자 서울의 전시회에도 작품을 출품한 정명자(77) 반장은 “선생님께선 초창기부터 기름값도 안 받고 멀리 영동에서부터 와서 가르쳐 주셨다”며 “선생님의 가르침과 봉사 정신에 너무 감사드린다”고 했다.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열리지 않지만 동양화반은 매년 말이면 복지관 전시회에 여러 작품을 출품해왔다. 직장에 다니랴 학교에 다니랴 바쁠 텐데도 자식들과 손자들이 시간을 내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 찾아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보고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응석에 계속해서 붓을 잡게 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치매, 노인 우울증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는 요즘 동양화반이 있어 그림을 그리며 소근육을 움직여 치매도 예방하고 반 친구들과 수업 중간중간 담소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는 어르신들.


특히 동양화를 비롯해 연필화, 인물화 등을 섭렵한 최고령자 이승우(93) 어르신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그땐 어른들이 한문을 최고로 여겨 그림을 그리려 하면 많이 혼났다”며 “지금이라도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삶에 위로가 되고 어릴 적 꿈을 되찾는 곳, 복지관 ‘동양화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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