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크는 것도 시대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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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크는 것도 시대 따라서
  • 이흥주 옥천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6.06.30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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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네 살 땐가, 애기로만 알았던 아이가 할아버지네 집에 왔다가 저희 집에 가려고 방문을 나서며 느닷없이 말했다.
“할머니! 며칠 있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며칠 있다요!”
우리는 깜짝 놀랐다. 아긴 줄 알았던 녀석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튀어 나올까.
녀석은 제 할머니를 놀러오라고 말하면서 며칠 있다가를 유난히 강조했다.
지금 당장 저희 집에 가자고 하는게 아니고 다음에 오라고 하는 것이니 ‘며칠 있다’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우리가 놀란 건 바로 그 말이었다. 그냥 “할머니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했으면 덜 놀랐을 것이다. 그 “며칠 있다 요”가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얼마 전 그 녀석이 우리 집에 왔을때다.
그냥 우리 나이로 이제 여섯 살이라고 하지만 만으로는 아직 다섯 살이다. 이 녀석이 할아버지에게 오더니 물었다.

할아버지 돈 얼마 있느냐고.
그걸 왜 묻느냐고 했더니 그냥 할아버지가 돈 얼마 있나 알아보려고 묻는단다. 난 천진한 아기로만 알았던 녀석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데 적잖이 놀랐다. 가끔씩 돈을 만원씩 주었는데 그날은 할아버지가 돈줄 생각을 안 하니 돈 달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난 찔끔해서 쌍둥이 손자에게 만원씩을 쥐어 주었다. 이란성 쌍둥인데 그중에 손자가 이렇게 가끔 할아버지를 놀라게 하고 웃게 만든다. 덕분에 돈 이 만원을 빼앗긴 할아버지는 즐거워서 바보처럼 껄껄껄 웃었다.

그때 아들이 말했다.
언젠가 운전을 하고 가다가 다른 차와 실랑이가 붙고 약간 위험한 상황이 있었는데 두 아이들이 겁에 질려 울더니 손자가 말하더란다. 아빠 운전 처음부터 다시 배우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아들이 이제는 아들에게 꾸지람을 듣고 사는구나 하고.

다들 이야기 한다.
요즘 아이들은 옛날 우리 클 때하고 다르다고. 훨씬 조숙하고 머리가 일찍 트인단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아기방, 놀이방, 유아원, 유치원에 가서 여러 아이들과 부딪치고 부대끼며 일찍부터 세상을 배우며 크니 일찍 깨일 만도 하겠다.

한글과 숫자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훨씬 전에 일찌감치 배우고 만다. 문자해득은 이제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이 아닌 유아원, 유치원 영역이고 과정이 되었다. 아이들 크는 모습도 시대 따라 가는가보다.

이제는 아이들 앞에서 말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긴 줄 알고 함부로 말하다가는 녀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찔끔한다.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아이들을 여전히 아기로 생각하며 함부로 말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이 어른들 아닌가.

아이 때 어른에게서 받은 상처나 어른들의 어른답지 않은 행동은 평생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에 깊이 심어진다.

반대로 좋은 기억은 아이의 평생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꾸 되짚어 보고 싶은 그리운 유년시절로 남는다.

더듬더듬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들.
생각지도 않게 어른 같은 말이 튀어 나와 어른을 놀라게 하는 요즘 아이들.

언젠가 내가 한 말이 녹음한 듯이 너무 어린 아이 입에서 튀어나와서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그렇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또한 어른들의 즐거움이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말을 배우기까지 그 짧은 기간 동안에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들 말한다.

품안에 들 때 열심히 예뻐하고 귀여워하자. 장성하면 장성한대로 자식이 좋지만 잔정은 어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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