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사랑했던 현대 동요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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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사랑했던 현대 동요의 대부
  • 김수연기자
  • 승인 2021.01.07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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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정순철 선생
어린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짝짜꿍’, ‘졸업식노래’ 등을 작곡한 정순철 선생
어린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짝짜꿍’, ‘졸업식노래’ 등을 작곡한 정순철 선생

 

‘짝짜꿍’, ‘졸업식 노래’ 등 많은 동요 작품을 남긴 정순철 선생은 1901년 청산면 교평리에서 태어났다.

정 선생의 어머니 최윤은 동학의 2대 교조인 최시형의 딸로 최시형은 당시 관아, 일본군을 피해 쫓겨다니며 포교 활동을 지속했는데 부인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딸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1894년 옥천의 민보단에 잡혀 관아에 갇혔다. 

당시 옥천 현감은 청산면의 정주현에게 최윤을 데려가라 했으며 그렇게 둘은 가정을 이루게 되고 정 선생이 탄생했다.

청산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던 정 선생은 어느날 학교를 중퇴하고 집을 나와 옥천역에서 화물차에 몰래 숨어 타 서울로 상경한다.

정 선생이 최시형의 자손임을 알아본 동학 3대 교조 손병희를 통해 그는 서울에서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당시 정 선생은 손병희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이 인연을 통해 정 선생은 아동운동에 몸을 담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소년계몽운동 단체이자 아동인권운동 단체인 ‘천도교소년회’ 활동을 함께 하며 일본 유학시절에도 또 다른 어린이 운동 단체 ‘색동회’ 창립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동경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도 끊임없이 천도교 대교당을 중심으로 각종 어린이 운동을 전개했다.

정 선생은 1930년대 초 색동회 회원들과 함께 경성보육학교에서 보육교사들을 가르치며 ‘녹양회’라는 아동극 단체를 만들어 소나무, 백설공주, 금강산 등 이야기와 노래를 접목한 여러 동화극과 학교극을 발표했다.

이 연극들 안에 삽입된 동요는 모두 정 선생이 작곡한 노래들이었다.

정 선생은 1934년까지 경성보육학교에 재직했고 1939년부터 1941년까지 두 번째로 음악공부를 하러 동경에 거주했다.

광복 후 1948년부턴 서울의 성신여고에서 교사로 근무했는데 당시 ‘한국의 베토벤’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가 성신여고에 재직할 당시 6·25 전쟁이 발발했고 학교 교장이 피난길에 오르며 정 선생에게 학교를 부탁해 그는 학교에 홀로 남게 된다.

하지만 혼자 남아 있던 정 선생은 인민군의 후퇴와 함께 납북되며 그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전쟁 이후 납북·월북 가리지 않고 북으로 넘어간 인사들을 거론하는 것이 금지되며 그의 이름 또한 잊혀졌지만 최근에 그의 업적이 재조명되며 현재 청산면 교평리 마을회관 앞에는 정 선생을 기념하는 벽화거리가 조성돼있고 생가터를 알리는 표식도 남아있다. 

또한 옥천군에서는 2008년부터 매년 ‘짝짜꿍 동요제’를 개최하며 간간히 정 선생을 주제로 한 연극 등을 통해 그를 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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