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와 쉼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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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와 쉼의 과학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21.02.2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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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은 얼마 전 연차 휴가를 내서 가족과 함께 2박 3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언제부터인가 ‘피곤하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고 있었기에 가족과 함께 한 여행은 긴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다.

하지만 일상으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심한 피로감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목 뒤편은 만성적으로 뻣뻣하고, 등과 어깨 부위의 이곳저곳이 쑤시고, 머리는 안개가 낀 것처럼 맑지 않고 두통이 간단없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온몸의 기가 흘러나간 것 같은 무기력한 느낌이 지속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새 제품의 런칭을 준비하면서 회사 임원진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시간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함께 입사한 동기 중에서도 가장 먼저 부장승진을 앞두고 있을 만큼 인정을 받고 있던 터였다.

어제는 상무님으로부터 지난번 올린 기획안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아서 다시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 자신에게 이때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의 끈을 단단히 조인다.

오늘은 퇴근하면서 인근의 타이마사지 숍에 가서 목 뒤편과 등의 뻣뻣한 곳을 풀어야겠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다음 주에 있을 프리젠테이션의 초고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건강의 측면에서 김과장에게 이 시기가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

자신의 몸에서 보내는 경고신호를 외면하고 지나치는 중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사지를 받는 것은 근육의 긴장에서 비롯된 통증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느끼는 ‘피로감’은 다른 곳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업무에 집중하면서 생긴 자세불균형과 그에 따른 근육의 경직과 통증도 일조하였지만,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해서 자율신경 균형이 무너진 것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다.

회사업무와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 중에서 교감신경이 더욱 우세한 상태로 만든다.

자율신경의 만성적인 불균형은 체내 호르몬분비의 불균형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교감신경이 우세한 상태에서는 부신에서 코티졸의 분비가 증가한다.

이 코티졸은 인체가 활력을 갖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만성적으로 교감신경이 우세한 상태에서는 코티졸의 분비가 고갈되고 결국 인체는 무기력하고 의욕이 상실된 상태가 된다.

김과장의 뇌에서는 부장승진 여부가 걸린 중요한 기획안에 대해 상무님의 칭찬을 받게 되자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가 왕성하게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지난 피로가 어디론가 날아가고 새로운 의욕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동안 한두 번 경험한 일이 아니었다.

김과장의 뇌는 다시 한번 안간힘을 다해 도파민과 코티졸을 분비시키며 피로를 잊어버리도록 하는데 잠시 성공했을 뿐이다.

결국 교감신경이 반복해서 혹사당하는 결과 뇌의 신경말단에서 다량의 활성산소가 생성되고 에너지 생성공장인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은 더욱 쇠퇴하면서 더 깊은 피로감을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도파민이나 세로토닌과 같은 뇌의 신경전달물질도 고갈되면서 더 깊은 피로의 악순환에 빠지게 될 운명이다.

김과장이 직면한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잘못된 ‘쉼’에 있었다.

성공을 쫓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의미의 쉼이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어진 일과 밖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완벽주의자 성격에 더해 그는 그 쉼을 몸의 완전한 비활동상태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 쉼을 더 많은 회식, 더 많은 카페인, 더 많은 TV시청, 더 많은 흡연으로 채웠다.

김과장에게 피로의 벼랑 끝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회사의 업무를 집으로 갖고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사지를 받거나 거실의 소파에 몸을 맡기는 대신 30분 정도 대근운동을 하는 것이다.

걷거나 달리기, 수영, 사이클, 여러 구기 운동과 같이 전신의 큰 근육을 동시에 움직이는 운동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우면 일과 중에라도 짬을 내서 하는 틈새 운동도 자율신경의 기능을 회복하고 호르몬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운동을 통해 매일 생활에 새로운 리듬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가장 좋은 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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