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우리 이장님] “어르신들이 편안하면 저도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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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 우리 이장님] “어르신들이 편안하면 저도 편안합니다”
  • 김병학기자
  • 승인 2021.04.15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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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평계리 조성기 이장
조성기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편안할 때 저도 편안함을 느낀다”며 “마을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끊임없이 살피고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조성기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편안할 때 저도 편안함을 느낀다”며 “마을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끊임없이 살피고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옥천군 최남단에 위치하며 마니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중산간 마을 평계리(이장 조성기, 71).

1739년 조선후기에 발행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이남면 세곡리라 하여 지금의 수묵리와 평계리를 관할하였고 1891년 ‘신묘장적’에도 이남면 세곡리로 표기했다.

하지만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이남면 세곡리를 수묵리와 평계리로 다시 나누었으며 이때 평촌과 계촌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 ‘평계리(坪溪里)라 했다.

이남면에 속했다가 1929년 면 통폐합 때 이원면에 편입되었다.

포도 아닌 다른 작물 재배

60가구 120명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평계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포도가 주산품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민들이 포도 생산을 멈췄다.

지금은 단 한 가구만이 포도를 생산한다.

이유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

대부분의 농가들이 자두 등 다른 작물로 대체를 하고 있다.

“과거 캠벨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주민들이 막상 샤인 머스캣으로의 품종 전환을 하자니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며 더욱이 포도라는게 워낙 손이 많은 가는 작목이다 보니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 면에서 버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한다고 조성기 이장은 귀띔한다.

조 이장은 이곳 평계리에서 태어나 줄곧 이곳에서만 살아왔다.

남들처럼 잠시도 외지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저 평계리가 좋아 평계리를 지키며 평계리 발전만을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20년 동안 이장을 본 경험도 있다.

‘구관이 명관(?)’

그래서일까, 주민들은 2018년부터 조 이장에게 다시 이장을 맡겼다.

아무래도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에.

하지만 다른 마을과 달리 평계리는 이장을 하려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그래서 추대란 없다. 반드시 투표로써 이장을 선출해야 한다.

“이장 선거는 저희 마을 행사 가운데 가장 큰 행사 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여느 선거보다 뜨겁고 진지합니다. 그러나 일단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당선자건 낙선자건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갑니다”라고 했다.

평계리가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은 다른 마을과 달리 귀농·귀촌인들과 원주민 간 ‘화합’이 잘된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유로는 귀농·귀촌인들로 하여금 원주민들의 뜻에 따라 주라고 하기에 앞서 오히려 원주민들이 먼저 그들을 품고 안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년 귀농·귀촌인들의 숫자가 늘어나 지금은 10가구가 살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

“평계리가 지난 해 해뜰마을사업에 선정돼 2km에 달하는 마을 도로포장을 마쳤으며 올해는 48억을 들여 소하천 공사를 진행중입니다. 늦어도 내년 말에는 완공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라는 조 이장은 “모르긴 해도 저희 마을같이 쓰레기 분리를 잘하고 있는 곳도 드물겁니다. 다른 마을에서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확실하게 처리하고 있죠”라고 했다.

이 외에도 조 이장은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 틈틈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라면과 삼계탕을 대접하며 비록 소액이지만 마을과 옥천군에 장학금도 기부해 오고 있다.

마을회관 앞 평계리 표지석과 유래비
마을회관 앞 평계리 표지석과 유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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