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닭니의 비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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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닭니의 비상을 꿈꾸며
  • 강병철 소설가
  • 승인 2021.04.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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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어느 날, 아버지가 교실 문을 열고 나를 불렀고 그 길로 서울행 버스를 탔다.

열세 살, 북아현동 언덕길 판잣집 방 한 칸에서 서울 유학생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앉은뱅이 밥상 하나와 중고생인 형과 누나의 이불 두 채가 전부였던 고독한 일상이 하염없이 되풀이되었다.

낮에는 구릉 너머 와우아파트 반듯한 빌딩들을 보며 가슴이 설레었고 밤에는 굴레방 다리 건너 남대문 시장 불빛의 황홀감에 빠지곤 했다.

그뿐이었다.

성적표도 시나브로 떨어지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더는 내밀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

어느 날, 남대문 시장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고 와우아파트도 무너졌다.

외로움에 사무치면서 골목길 전신주에 기대어 고향 바닷가만 떠올렸다.

“갯장어 잡으러 갈래?” 정달이 성님이 팔소매 당기던 소리가 북아현동 자취방 유리창으로 쟁쟁 들리는 것이다.

그렇게 대밭집 머슴 증섹이성, 윤언이성까지 밤바다로 진출했던가.

출렁이는 썰물 아래로 도미 새끼 지느러미 치는 게 훤히 보였다.

“아름답징?” 감탄사 던지다가도 갯장어만 나타나면 작살을 날렸다.

박하지와 고등도 열댓 개 건졌고 “장개는 은제 갈라유?” 서낭당 아래 부모님을 만나는 순간 아차,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초저녁부터 다섯 시간 내내 남포등 들고 서성이며 돌아오지 않는 아들만 하염없이 기다린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단맞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밤바다 풍경만 가슴에서 출렁이는 것이다.

조개 구럭 채워오던 정자 누나는 그해 겨울 고무신 공장 식모로 떠났다.

눈사람 만들어 주던 영구 형님은 생강굴에서 떨어져 죽었다.

모래밭에서 기계체조 재주 넘기 멋있게 보여 주던 정달이 형은 새우젓배 타고 떠났다가 그믐달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었다.

달빛만 저 혼자 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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