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으로 일궈진 엄나무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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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으로 일궈진 엄나무 농장
  • 오현구기자
  • 승인 2021.04.29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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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향수애’
정성만 대표가 엄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정성만 대표가 엄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정성만(52) 대표는 옥천군 군북면 용목마을에서 엄나무 농장인 ‘향수애’를 운영한다.

산등성이 농장에 오른 정 대표는 병들거나 말라가는 나무는 없는지 묘목의 상태부터 살핀다. 이어 전지가위를 들고 웃자란 가지를 친다.

정 대표는 옥천에 오기 전 대전에서 25년 이상 복수의 미용실로 이뤄진 연쇄점을 운영했다. 엄나무 묘목을 심고 키우는 농장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사람이었다.

악연(惡緣)이 선연(善緣)으로 바뀌다

도시에 살던 정 대표의 귀농은 어떤 고객과의 인연으로 인해 우연히 이뤄졌다.

“가위로 머리를 다듬는 솜씨를 보니 나뭇가지를 쳐내고 다듬는 조경수를 해도 잘하겠다”며 “묘목을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냐”고 하는 고객을 만난 것.

단순한 결정인 줄 알았던 묘목으로 인해 정 대표는 미용실 대표에서 농장 대표로 본업이 바뀌게 된다.

알고 보니 그 고객은 묘목 장수였는데 “5~6년 열심히 가꿔놓으면 자신이 다 팔아주겠다”는 호언장담을 했다.

그 말에 넘어간 정 대표는 괭이질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음에도 산밤나무, 해송, 적송 묘목들을 무려 3만 주나 심었다.

문제는 그 후였다.

호언장담하던 묘목 장수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화가 난 정 대표는 묘목 농사 때문에 산 장비도 몽땅 팔아치웠고 묘목 3만 주도 내놓았다.

묘목 상들은 묘목을 뽑는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 만큼 값을 후려쳤다.

정 대표는 너무 어이가 없어 묘목 3만 주를 몽땅 갈아엎었다. 그 후 ‘귀농이라는 걸 작정하고 왔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하는 후회를 했다.

정 대표는 암담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헤어날 길이 없잖아요. 제가 너무 멀리 왔어요. 그때는 정말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역경에 굴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뭔가?’ 하는 고민과 함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게 뭔가?’ 하는 생각을 계속 이어갔다.

오랜 고민 끝에 ‘가시없는 엄나무’를 그 당시에는 비싼 값으로 500~600주 정도 샀다.

‘가시없는 엄나무’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니 ‘한번 해보자’ 마음먹고 모든 힘을 집중했다.

‘가시없는 엄나무’는 처음에 아랫마을 주민이 가시가 없으니 신기해서 채취 해왔다고 한다.

그 주민은 그 나무를 번식시키다 판로가 없어 정 대표에게 몽땅 팔았다고 한다.

정 대표는 ‘가시없는 엄나무’를 대량으로 번식시키기 위해 “삽목도 해보고 접목도 해봤는데 뿌리 근삽이 제일 번식률이 높았다”며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알았다”고 했다.

‘가시없는 엄나무’도 처음에는 판매가 잘 안 됐다.

한 트럭 가득 싣고 이원에 갔더니 묘목상으로부터 “가시없는 나무가 무슨 엄나무냐”는 말만 들었다.

정 대표는 하는 수 없이 경북 경산까지 싣고 가 팔아오길 반복하며 농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시없는 엄나무’가 알려지며 “우리한테는 왜 안 주냐”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묘목 키우는 행복

정 대표는 귀농 후 바뀐 삶을 이렇게 말했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어요. 봄에 묘목 심을 때 한 달이 바쁘고 엄나무 순 딸 때 한 달이 바쁘잖아요. 그 시기가 지나면 평온함이 오잖아요. 산 정상에 올라 내가 심은 새끼들이 크고 있는 걸 보면 흐뭇해요. 그럴 때 또 평온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엄나무 순을 음식 재료로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한다며 “말려서 가루로 만들면 떡이나 수제비를 만든다던가 칼국수에 섞어 건강식품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정 대표는 엄나무 농장을 일찍부터 운영해서 견학생도 많이 온다고 한다.

농업기술센터와 수목센터 강사들도 오는데 견학생들이 묘목과 나무 키우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하면 모두 알려줬다고 한다.

“세상은 어차피 2~3년 지나면 다 알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알려주지 않은 사람은 치사한 사람이 된다”며 “질문이 마구 쏟아지면 일을 못 하니 바쁠 때 오는 것은 거절”이라고 부탁했다.

귀농 후배들에게는 “망설이면 늦지 않을까 싶어요”라며 부탁의 말을 이어갔다.

“너무 고민만 하다가 때를 놓치는 것 같아요. 때를 놓치면 두려워서 못하잖아요. 정말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도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공부는 해야겠지만요. 그리고 ‘귀농할 때 집은 멋있게 짓지 말라’ 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자신이 1억을 가지고 귀농했는데 집 짓는 비용으로 8천만 원을 쓰면 남은 2천만 원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라고 했다.

군에서 필요한 지원으로는 “아이가 어리니까 주거 보조가 되면 좋겠어요. 학교를 보내고 학원을 보내고 하는 시스템이 도시처럼은 안 되잖아요. 학원과 방과 후 수업을 연계 시켜 아이 돌봄 일원화가 되면 참 좋은데 이게 안 되니 아직도 아이를 데려오지 못하고 있죠. 주거 문제는 임대 영농주택 등을 저리로 보조하면 쉽게 정착하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했다.

정 대표는 “거리를 두지 말고 귀농인들을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에 이어 “지금까지 저를 믿어준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미소를 지었다.

문의 010-8082-7444 (정성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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